Skip to main content

Traveller 200909

작성자
hongjiyoon
작성일
2015-02-25 05:17
조회
715
지난 여름 7월22일 레겐스부룩에 도착하니 트레블러의 노가화라는 에디터로부터 메일이 왔다.
'화첩기행'을 청탁했다.
일년내내 작업실을 스스로 감옥삼아 살아가는 내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여름날의 레겐스부룩을 지나칠 수 없었다.
8월15일 돌아오는 날 막바지가지 은근히 내 신경줄을 잡아당기던 원고가 잡지에 실려나왔다.
이제 사연도 많고 감회도 많은 레겐스부룩과나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하고있다.
언젠가는 모든 걸 말하게 되겠지 ....
일단은 작년작업 Bohemian Edition에 얽힌 일화가 소개되었다.



Bohemian Edition 2008~2009


Regensburg
지금은 14:44 P.M Regensburg에서 Munich으로 가는 기차 안이다.
3년 전 뮌헨 전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김선생님의 권유로 올 여름 독일 여행의 마지막 날은
뮌헨에서 보내게 되었다. 7월 초에 오픈 한 북경 개인전에 너무나 큰 욕심을 낸 나머지 몸과
마음이 남은 것 없이 소진 되어있던 터였다. 북경에 가서 그림을 다 걸어놓고 오프닝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 다시 짐을 꾸려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도망치듯 공항으로 향했다.
마음의 고향, 레겐스부룩에 다녀와야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공항에서 산 두터운 두 권의 소설 책 - 중국 작가 차오원쉬엔의 ‘세연인’과 김훈의 ‘칼의 노래’를
베게 삼아 안드레아스네 정원 사과나무그늘아래서 모자란 잠도 자고 이름 그대로 비가 많은 작은 도시 레겐스부룩 (regen은 ‘비’라는 뜻이다.) 시내 구석구석, 가끔씩 성 피터 성당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좁은 골목 길을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그리고 소용돌이치다 잠들어 흘러가고 또 소용돌이치는 나를 닮은 춤추는 도나우강물결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고 지친 눈을 적셨다.
그렇게 3주가 지났다.


Apple tree
“툭!” ….”아후 깜짝이야!“ 커피를 마시며 사과나무를 바라보던 내 눈 바로 앞에 아직 아기 주먹
만한 사과 한 알이 떨어진다.
안드레아스의 아내 안나가 가꾼 작은 정원은 머리를 자르듯 단정하게 손질하는 여염 독일 집과는
다르다. 수령이 50년이 되었다는 사과나무는 곁에서 자라는 무성한 포도나무와 어울려 그윽한 그늘을 만든다. 그리고 마음대로 자라난 크고 작은 꽃들과 몇 그루 배 나무, 활짝 피어있기도 하고 시들어 고개 숙인 갖가지 향초들 .. 가끔씩 나타나는 귀여운 도마뱀과 거미, 작은 새들 모두 그들과 한데 어울려 원시적이고 나지막한 한가로움을 전해준다. 매년 그렇듯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밤이면 사과나무주변을 작은 등불과 촛불로 장식하고 안드레아스의 큰 딸 테레사가 연주하는 조용한 기타연주 Blowing in the wind 를 듣는다. 그리고 소박한 독일음식과 내가 만든 한국음식... 여름 밤이 깊어간다.


Goddess in the garden
올해보다 좀 더 일찍 이곳 레겐스부룩에서 여름 날을 보내던 작년 어느 날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난 테레사의 친구 엘라를 처음 만났다.
마치 남녀가 만나 한 순간에 사랑에 빠지듯 내 동공이 활짝 열렸다.
여름 풀을 닮은 그녀의 초록 눈동자, 금발보다는 좀 더 붉은 부드럽게 곱슬거리는 긴 머리카락, 노래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 루벤스의 그림 속에서 빠져 나온 듯한 풍만한 육체…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모습에 이끌려 절로 카메라 셧터에 손이 갔다. 테레사가 가져 온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화집과 곳곳을 다니며 사 모아온 고전 명화그림 엽서의 여인들이 그대로 엘라의 포즈가 되었다. 도나우 강물이 흘러가며 한 장 한 장 그림을 만들어 가듯 한 컷, 한 컷 Bohemian Edition이 만들어지던 순간이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정원에 여신이 환생하기 시작했다.


Episode1. – 여행 : Blowing in the wind
뜨거운 여름날 이름 모를 곳을 여행하고 있을 때에도 전시를 위해 동서분주 낯선 곳을 찾아 나설 때에도 그리고 가만히 창가에 앉아서 부서지는 햇살에 무지개 빛 날개를 한 눈부신 새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나의 영혼은 바람 속 또 다른 어딘가를 맴돈다.
그대로 난 길이 아닌 아무도 모르는, 나조차도 몰랐던 길을 무심히 지나갈 때
자유, 방랑, 떠도는, 늘 움직이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영혼과 같은 단어들이 내 주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어떤 이상도 감상도 이성도 감성도 아닌 내 심장과 혈류를 따라 흐르는 그러한 것들.

Episode2. - 빛과 그리고 그림자 : ‘Bohemian edition’. :
잡히지 않는, 잡을 수도 없는, 나를 끊임없이 고독하게도 행복하게도 하는
보헤미안을 닮은 나의 영혼을 판박이 하여 나와 꼭 닮은 모습으로 남겨진 책처럼
잠시 붙잡아 두고 싶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 잠시 멈춘 빛의 기록물인 사진의 속성에 대해 집중한다.
빛은 멈출 수가 없다. 내 영혼도 마찬가지.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갈 뿐.
빛의 기록물인 사진과 내 영혼의 그림자와 같은 기록물인 시와 글씨와 그림이 만난다.
떠돌던 길에서 마주친 물, 꽃, 풀, 정원, 아름다운 여인, 작은 새, 도시, 하늘을 담은 사진 위에
지필묵으로 그리고 쓰고 난 후 스캐닝을 하거나 사진으로 찍은 시와 글씨와 그림이 얹어져
또 다른 하나의 사진이 되었다.
쉼 없이 유유히 흐르던 다뉴브 강의 물결, 마음대로 자라난 풀숲과 사과나무와
꽃잎들이 무성한 친구의 다정한 정원, 아름다운 금발의 풍만한 여인, 무지개 빛 날개를 단 작은
새들, 소도시, 신비롭도록 푸른 하늘과 구름,
그러한 것들 위에서 나의 새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고 그들을 따라 내 영혼도 노래하고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