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미술 Review November 2008
작성자
hongjiyoon
작성일
2015-02-25 05:12
조회
701
흥지윤 展 10.1-7 갤러리 나우
문화의 퓨전현상을 두고 어떤 문화평론가가 어디선가 그랬던 거 같다.
문화에서 퓨전, 즉 섞음 현상은 실제로 제대로 된 섞임이 아니라고.
조수미가 대중가수 조용필이나 시인 정지용을 노래할 순 있지만
대중가수가 오페라나 아리아를 가요로 부르는 건 불손 하다는 거다.
불손할 거까진 아니지만 대중문화의 편에서 여전히 고급/순수문화는 융합할 수 없는
순수한 대상이라는 거다.
사실 예술의전당에서 가요를 들을 순 있어도 홍대에서 오페라를 듣기는 확률적으로
매우 힘들다.
오페라 가수는 간혹 가요를 부르지만 가수가 오페라를 부르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
그런 점에서 퓨전은 사실 대중문화의 고급 혹은 순수문화를 향한 외로운 짝사랑 혹은 흘사랑?
물론 현상으로만 보자면 문화에서 퓨전은 넘친다.
퓨전음식, 퓨전사극, 퓨전음악등. 홍지윤의 작품 역시 '퓨전이다' 라고
예단하고 보면 그의 이번 개인전 작품은 동양화라기 보단 사진에 더 가깝다.
홍지윤이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선지평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의 이번 작품들을 과감히 동양화, 그러니까 퓨전 동양화라 할 수 있을까?
물론 낙관이나 붓으로 쓴 먹글씨로 동양화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겠다.
그런 소재주의로 치자면 컴퓨터 합성과 디아섹 지지체는 작품을
사진의 장르에 훨씬 기울게 만든다.
난 오히려 이번 홍지윤의 작품을 퓨전사진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진기로 사물을 포착하고 그 위에 텍스트를 남기는 퓨전사진.
바로 이런 점, 퓨전의 국적 불명 성, 정체 불명 성, 소재불명성이야말로
하이브리드가 가진 장점일 터다.
그의 작품은 그러니까 동양화. 사진, 시, 페인팅, 디자인 그 모두의 언저리에 걸쳐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무엇보다도 텍스트다. 시다.
그리고 그가 화면 가득 써 놓은 시구들은 '대개 그러한 것들'이다.
대개 그러한 것들. 나이듦과 떠남, 바람과 빛, 대기와 소음이 가져다주는 일상과 클리셰다.
이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보헤미안 에디션'들은 대개 그러하듯 머물지 않고 떠난다.
금세사라지는 뿌연 아지랑이 같은 이미지들을 시어들이 꽉 잡고 있다.
가령 밥 딜런의(Blowing In the wind) 노랫가락은
콘트라포스트로 서있는 금발 여인과 결합하여 색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시어들이 그림의 여백을 채우고 그림은 시어로 인해 풍성해진다.
서양화에선 결코 어울리지 못했던,
그래서 말 없는 시' (회화)와 '눈먼 그림' (시)이라 폄훼된 둘이
그의 화면에서 조화롭게 동거 한다.
정형탁 ․ 전시 출판 기획자
문화의 퓨전현상을 두고 어떤 문화평론가가 어디선가 그랬던 거 같다.
문화에서 퓨전, 즉 섞음 현상은 실제로 제대로 된 섞임이 아니라고.
조수미가 대중가수 조용필이나 시인 정지용을 노래할 순 있지만
대중가수가 오페라나 아리아를 가요로 부르는 건 불손 하다는 거다.
불손할 거까진 아니지만 대중문화의 편에서 여전히 고급/순수문화는 융합할 수 없는
순수한 대상이라는 거다.
사실 예술의전당에서 가요를 들을 순 있어도 홍대에서 오페라를 듣기는 확률적으로
매우 힘들다.
오페라 가수는 간혹 가요를 부르지만 가수가 오페라를 부르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
그런 점에서 퓨전은 사실 대중문화의 고급 혹은 순수문화를 향한 외로운 짝사랑 혹은 흘사랑?
물론 현상으로만 보자면 문화에서 퓨전은 넘친다.
퓨전음식, 퓨전사극, 퓨전음악등. 홍지윤의 작품 역시 '퓨전이다' 라고
예단하고 보면 그의 이번 개인전 작품은 동양화라기 보단 사진에 더 가깝다.
홍지윤이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선지평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의 이번 작품들을 과감히 동양화, 그러니까 퓨전 동양화라 할 수 있을까?
물론 낙관이나 붓으로 쓴 먹글씨로 동양화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겠다.
그런 소재주의로 치자면 컴퓨터 합성과 디아섹 지지체는 작품을
사진의 장르에 훨씬 기울게 만든다.
난 오히려 이번 홍지윤의 작품을 퓨전사진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진기로 사물을 포착하고 그 위에 텍스트를 남기는 퓨전사진.
바로 이런 점, 퓨전의 국적 불명 성, 정체 불명 성, 소재불명성이야말로
하이브리드가 가진 장점일 터다.
그의 작품은 그러니까 동양화. 사진, 시, 페인팅, 디자인 그 모두의 언저리에 걸쳐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무엇보다도 텍스트다. 시다.
그리고 그가 화면 가득 써 놓은 시구들은 '대개 그러한 것들'이다.
대개 그러한 것들. 나이듦과 떠남, 바람과 빛, 대기와 소음이 가져다주는 일상과 클리셰다.
이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보헤미안 에디션'들은 대개 그러하듯 머물지 않고 떠난다.
금세사라지는 뿌연 아지랑이 같은 이미지들을 시어들이 꽉 잡고 있다.
가령 밥 딜런의(Blowing In the wind) 노랫가락은
콘트라포스트로 서있는 금발 여인과 결합하여 색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시어들이 그림의 여백을 채우고 그림은 시어로 인해 풍성해진다.
서양화에선 결코 어울리지 못했던,
그래서 말 없는 시' (회화)와 '눈먼 그림' (시)이라 폄훼된 둘이
그의 화면에서 조화롭게 동거 한다.
정형탁 ․ 전시 출판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