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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아름다운 꽃

작성자
specialog
작성일
2015-02-25 11:41
조회
541
고운 흙 위에서 작은 그녀가 잠깐 낮잠을 자고 있었다.
지나가던 바람 한 자락이 바다를 구경하러 가려다
그 고운 자태에 눈이 멀어 그만 그녀를 깨워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소모하기 시작했다.

늦은 봄날저녁, 정원에 무더기로 피어난
무겁고 희고 탐스러운 그녀를 흔들자,
머리위로 어깨위로 그녀의 몸이 후두둑 떨어진다.
어찌된 일인지 종일 온 몸을 누르던 피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봄날이 지나 이제 막 화려 해 지기 시작한
그녀가 햇살 곁에 그늘을 드리워 얼굴을 간지럽힌다.
그렇게 비릿하던 마음도 늦봄 이른 오후의 햇살덕택에
그녀덕택에 개운한 日光浴을 한다.

한여름, 속눈썹위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부신 채
작고 야물고 가실한 수많은 그녀들을 바라본다.
작고 작은 그녀들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예전에도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고
또 이다음에도 살아 갈 거라고
다행히도 봉오리마다 꽃망울마다 짙은 향내가 들어있어서
앞으로 한참을 더 살아내야 할 그녀의 작은 몸이 조금 덜 힘겨워 보였다.

그녀는 그저 부드럽게 흐르던 물길위에서
봄이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작고 작은 연두 빛 잎사귀 하나였다가
여름이 되어 그 크기가 커진 탐스런 한 송이 꽃 덩이가 되었다가
가을이 찾아오면 세상을 물들일 만큼 깊고 화려한 단풍나무 한 잎이 되어
다시 물길과 함께 흐르고 또 흘러
한겨울이 되어도 굳게 얼어붙은 심연에서조차 쉬지 않고 봄을 꿈꾸었던
한없이 물기어린 꽃 뿌리 하나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