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를 사러가야지

나의 일과는 너를 만나는 날을 중심으로

그 전 사흘과 그 후 사흘로 나뉘지.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오고

꽃이 피지 않아도 꽃이 피고

무슨 사고 같은 것이 일어나지않아도

사고가 나고

하늘에 새가 날아가지 않아도

날아가지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하늘이 짱 소리를 내고 깨어질듯한 피아노 소리가 나지 않아도

누군가 연주를 하지

이 동네 사방에서는 한 오년전 즈음에는 태어나지 않았던 생명들이

이제는 태어나 자라나 말을 배우기가 무섭게 할퀴듯 울어대지

그렇게 하루가 갈때즈음에는

이쪽 한켠에서 우르르 새떼같은 검은 것들이 떼지어 날면

저쪽 한 켠으로 붉은 노을과 섞여들어 끝내주게 아름다운 빛깔로

클라이막스를 이루다가

익숙한 밤이 되어가지

그런 날들이

여러 번 지나고

너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고

음악이 잘나오던 스피커는

수명을 다하고

장렬한 종말을 맞게 되었지

아

나는 내일 스피커를 주문해야지

인생관을 바꿀것도 같은

멋진 자작나무냄새가 콧속까지 침투하는

자작나무케이스를 입은 진공스피커를 사러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