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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SIPA-Seoul International Print Photo Art Fair - 특별전 : 작가 홍지윤과의 interview

작성자
specialog
작성일
2015-02-22 07:37
조회
1048
2008 SIPA-Seoul International Print Photo Art Fair

- 특별전 '다양한 매체에서 탄생된 예술작품의 시나리오' 展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0.18-22







작가 홍지윤과의 인터뷰



Q: 동양화에서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결과물을 이끌어 내는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전통적인 동양화 재료를 가지고 작업을 하시다 어떠한 계기로 라이트 박스를 비롯한

사진 및 영상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처음부터 어떤 지점을 정해놓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영화미술감독인 동생이 2000년도 서강대 특수대학원(Bk21)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분야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동양화과 연구조교를 3년정도 하고 마칠 무렵이었는데,

어느 날 연대 정문에서 '디지털 할리우드' 라는 현수막을보게 되었고

그 순간홍보를 위한 플랜카드 디자인 만으로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에 디지털 할리우드라는 유명한 미디어 교육기관이 있는데,

지금 그 곳 출신들이 Sony와 NHK에 몸담고 있을 만큼 비중 있는 기관입니다.

그 학교가 한국에 분교를 낸 것으로 연대와 현대전자가 합작을 해서 만든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IT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분위기였고 여러 가지로 개인적인 요건과 맞아 떨어져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시기에 저는 동양화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고, 동시대성에 맞으면서 제 감각을 동원할 수 있는 분야가 없을까 하고 돌파구를 찾던 중 디지털 할리우드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3D애니메이션이 회화하는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 메일도 보내지 못할 정도로 컴퓨터에 문외한이었는데 전혀 새로운 분야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Q: 동양화가 지루해졌을 시기가 있었는데, 현재 작업들에서 보면 분명 기법적인 면에서는 달라졌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동양화다운 정취도 많이 느껴집니다.



A: 동양화는 제가 오랫동안 배웠던 것이고 조교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많은 책을 읽으면서 잘 알게 된 분야이기 때문에 제 작업의 밑바탕을 채워주는데 있어 부인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작업 주제는 동양적인 것, 불교에서 기인합니다. 불교 자체가 자신을 수행하는 것이며 동양화의 '지필묵' 재료와 맞닿아 있고, 느림을 강조하는 동양적 정신이 동양화와 통하는 점이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저에게 전통적인 동양화만 한다는 것은 하나의 제약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영화도 굉장히 좋아했는데 같은 영화를 좌석을 옮겨 다니며 보기도 했고 아트필름을 상영하는 작은 소극장도 찾아 다니기도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보기 보다는 미장센을 중점적으로 보고 각 스틸의 시각적 요소와 엔딩 크레디트에 아트디렉터 이름을 알려고도 했습니다. 이렇게 감각적인 면과 감성이 풍부했던 저에게 전통적인 동양화는 다소 답답하고 무거운 것이었고 이러한 느낌들이 현재 제 작업으로 변화하게 했습니다.







Q: 어릴 때부터 다양한 장르에 대한 관심이 전통적인 동양화의 또 다른 장르와 기법을 자유스럽게 접목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동양화를 전공으로 택하기 이전에 그림을 많이 그리셨는데, 학부는 왜 동양화를 선택하셨는지요?



A: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예원학교를 준비 해서 중학교를 진학했고 오래 그림을 그리다 보니 지루했습니다. 심리학이나 철학에 흥미가 있어 인문계 학교를 가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그렇다고 그림 그리는 것이 싫지 않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권유로 동양화과에 진학했지만 동양화가 정말 좋아서 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방황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초기에는 매일 영화 보러 다니는데 시간을 보냈지만 3,4학년 때 과제전을 열심히 준비해 졸업을 했고 자연스레 대학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에 가서 동양화 계에서 가장 사고가 유연하셨던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미술가로서 공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때 사고의 폭을 유연하게 넓힌 계기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하면서 니키드 생팔(Niki de Saint-Phalle), 장 드뷔페(Jeon Dubuffet)에 반해 돌아와서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Q: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컴퓨터를 다루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동양화를 전공하다가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컴퓨터를 사용하여 완성된 작품 속에서도 예술성이 있는 작업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셨는지요?



A: 저는 어릴 때 독특한 미술교육을 받았습니다. 외국인 학교랑 같이 있는 천주교 학교인 성심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학교에는 클래식 문화를 즐기는 친구들도 있었고 지금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어 있는 안트리오가 당시 한 반에서 공부를 했던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았는데 미술선생님도 따로 있던 학교라서 그림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 학교가 같이 있어 외국인 친구들과도 도서관을 함께 사용할 수 있었고, 매 학기마다 외국인 학교에서 열리는 바자회가 열리면 그래픽이 예쁜 미제 그림책을 싸게 구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구하기 어려운 것들을 접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독특한 미감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이런 제 유년의 미적 감성이 동양화와 컴퓨터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부분을 연결해서 작업할 수 있는 바에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Q: 컴퓨터 기술도 다양한 매체의 사용과 유용한 사고지점에서 작업에 접목이 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디지털 할리우드에서 배웠던 것들이 어떻게 작품에 투영되었나요?



A: 처음에 C-graph필름을 많이 봤는데 정말 환상적이고 멋졌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동양화와 연결시킬 생각은 없었고, 동양화 외에 새로운 것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처음으로 했던 작품을 2007년 런던 Harrods 백화점에 있는

LG-i gallery에서 전시했습니다. 그 때 시놉시스를 정해서 작업했던 것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한 것이었는데 어린 기생이 예쁜 옷을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옷을 맵핑할 때 손으로 그렸고 스캔을 한 후 맵핑을 다시 했습니다.

처음 3D를 배울 때 맵핑 소스가 저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Q: 컴퓨터 기술에서 오는 다양한 매력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베어 들었다고 봅니다.

그러한 다양한 시도가 작품의 형태로 전시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저는 디지털헐리우드에서 방법적인 측면을 많이 배웠습니다.

동영상 작품을 전시할 때 동영상을 캡쳐해서 스틸 컷을 뽑았고, 그것이 지금의 c-print와 별반 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매체에도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고 특히 어릴 때 교육환경이 은연중에 무엇이든지 다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형성 시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의상디자인을 하셔서 그림을 그린 것이 제품으로 나온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옷이 입고 싶은지 그려보라고 하시면 제가 그리고, 천을 고르라고 하면 골랐고, 그렇게 대학교 2학년 때 까지 엄마가 옷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거창하게 말해서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경험에 익숙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상상했던 것들이 현실로 보여지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Q: 동양화가 영상으로 바뀌고, 한지가 스크린이 되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상상의 것만은 아니었다고 보여집니다.



A: 네, 저에겐 그러한 것들이 갑작스러운 것이 아닌 당연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계기를 통해서2D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어릴 때부터 디즈니 캐릭터는 좋아했지만

그것이 움직이는 것에 매력을 못 느꼈습니다.

그런데 c-graph 자료를 보면서 영상 안에 회화적 필름들이 아름답다고 느껴져서

지금까지 했던 수묵작업을 스크린으로 옮겨 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3D애니메이션 외에 만든 작업이 2003년도 <붕(鵬)>입니다.

배경이 모두 수묵 추상이고, 그 위에 새가 계속 날아 다니는 작업입니다.

이 작업이 지금까지 하는 작업에 모티브가 된 것입니다.

매년 영상을 한 편씩 만들다가 작년에 베니스, 뮌스터, 카셀에 다녀온 후에 올 해 처음으로

영상 작업을 했습니다. ‘나도 영상 작업 한 번 해 볼까’하는 생각에 처음으로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할리우드에서 만났던 친구가 에프터 작업할 때 협업을 합니다.









Q: 그러면 편집 기술도 다 익히셨나요? 작업에 사용되는 기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A: 편집은 별 기술 없이 그냥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영상 작품에는 동양화가 갖고 있는 단순한 플롯이 영상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는 것처럼 화선지에 수묵화 또는 글씨, 완성된 그림의 전부나 일부를 사진이나 스캐너로 디지털화하고 그것을 C-print로 뽑을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디아섹으로

액자화 될 수도 있고, 그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문 출력을 받아서 라이트 박스가 되기도

하고, 그것들이 모아져서 영상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작업의 양식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제겐 가장 즐거운 부분입니다.









Q: 작품에서 주로 등장하는 소재가 여자와 꽃 입니다.

동서양에서 꽃은 주된 소재가 되는데 이러한 소재 부분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 올 해는 꽃을 소재로 하는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꽃이라는 것이 저에겐 서양화적 맥락이 아닌 사군자에서 나온 것입니다.

2006년 에 사군자로 작업을 많이 했는데 사군자로 뮌헨에서 퍼포먼스도 했고 축구공에

그려 넣기도 했으며 그것으로 만든 애니메이션도 제작했습니다.







Q: 요즘 '퓨전' 이라는 단어가 문화전반은 물론이고 많은 분야에서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는데요,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시기 때문에 홍지윤 작가 역시 '퓨전' 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작가이름 앞에 칭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A: 그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는데요, '디자인 정글 아카데미' 에서 커리클럼을 만들 때

저만이 할 수 있는 자체적인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미 말씀 하셨지만 그 때 퓨전음식 등 '퓨전' 이라는 말이 유행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동양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을 해 왔습니다.

일반 관객들도 동양화를 친근하게 접해주길 바랐습니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이미지와 타이포그라피의 결합인데 이것이 동양의 문인화와 너무나 똑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연결하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퓨전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그렇다면 홍지윤 작가의 작업이 '퓨전 동양화' 라 많이 불려지는 부분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A: 사람들이 '퓨전' 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지만 제가 스스로 그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평단이나 평론가들도 그 후에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제 작업은 ‘포스트’라는 개념과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퓨전이란, 다른 문화와 충돌하여 새로운 것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저는 모든 그림에서 시각적으로 표현된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빚어지는 동양화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외국 전시를 할 때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결합하는 것도 위와 같은

정신이라고 봅니다.







Q: 동양화 관련 분야에 얽매이지 않은 예술가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래도 동양화 기반 때문이어서 작업을 진행시킬 때 동양화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A: 저는 동양화로부터 시작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양화 출신인 것도 명백한 사실이고 제 성과 이름을 바꿀 수 없듯이 동양화는 족보와 같은 것 입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작가이고,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학제는 학제대로 중요합니다. 예술가에게 항상 새로운 것을 고집하는 전위적인 정신이 필요하지만 학교에서 까지 굳이 그렇게 대항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적인 입장도 존중 되어야 하며 전위적인 분야는 학교 밖에서 전시를 통해 보여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시스템과 부딫혔을 때에는 그것과 맞춰가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서 맞춰가면서 자기 생각을 계속 펼쳐나가는 것이 더 생명력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