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에 있어서 현대문인화(現代文人畵)의 융합(融合)적 변용(變容)에 대한 연구
작성자
hongjiyoon
작성일
2015-02-25 04:56
조회
1439
< 2011년11월8일 홍익대 박사과정 4차학기 발표 자료 >
동양화에 있어서 현대문인화(現代文人畵)의 융합(融合)적 변용(變容)에 대한 연구
<홍지윤의 퓨전동양화>를 中心으로
<<문제제기와 목적>>
미술조형의 문제 : 혼성과 융합의 현대 동양화
미술기능의 문제 : 현대미술에서 동양화의 위치 - 동양정신이 강조된 미술
‘Fusion’ (A fusion of different qualities, ideas, or things is something new that is created
by joining them together) 이란 융합, 또는 결합을 의미하며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을 섞어 새롭게 만든 것, 그리고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하여지거나 그렇게 만듦, 또는 그런 일을 말한다. 서로 섞이면 혼합이 일어난다. 서로 혼성된 각 요소들은 여전히 본래의 기질들을 지니고 있지만, 합체로 인해 기존의 상태에서는 불가능했던 풍부함과 다양성을 얻는다.
동양의 전통 사상인 음양론(陰陽論)은 사물을 포함한 자연계의 만물에는
흔히 음(陰)과 양(陽)이라고 부르는 양자가 서로 상대성을 지니고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둘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서로 공유하고 순환하여 하나를 이루게 된다고 했다. 연구자는 작업에 있어서 이를 실험하고 그것을 연구자가 추구하는 현대동양화의 지점으로
삼기로 했다. 전통 채색과 수묵실험 이후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퓨전동양화’의
단초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연구자는 언제나 삶의 과정에서 서로 상반된 것들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무거움과 가벼움, 아날로그와 디지털 등이다.
한 우물만 파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했던 근대주의적 미술환경과 그 안에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 분석적인 사고보다는 초월적이고 직관적인 사고를 중히 여겨온 동양화의 담론, 그런 동양화가 가져야 할 한국성의 문제 제기들이 당시 연구자 주변의 모습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연구자가 개입된 동양화를 어떻게 현대미술에 개입하도록 할 것인가라는 미술기능의 문제와 혼성적 사고의 특성을 가진 연구자가 만든 미술을
어떻게 현대미술담론의 내부에 안착시킬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연구자는 국제적인 천주교 재단(Sacred Heart)인 성심여학교에서 국제학교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했던 유년을 보냈고, 패션디자이너였던 어머니로부터 서구적인 영향을 받고 자랐다.
그리고 동양화를 전공했다. 연구자에게 이처럼 혼성된 자아와, 반만년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미국의 식민지문화를 공유하는 혼재된 한국은 다르지 않았다.
연구자는 이 둘을 내면에 존재하는 하나의 거울에 넣어놓고 관찰했다.
관찰의 방법은 이분법적 사유가 아닌, 나와 개체를 동일하게 인식하는 순환적 체계의 동양적 사유였다. 이로써 한국성과 연구자의 미술을 동양적 사유에 기반 한 ‘혼성’과 ‘융합’으로 정의하게 되었다. 연구자는 이를 동양화 전공자이자 미술가인 연구자의 미술조형과 기능의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순환적 인식의 과정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주제와 매체간의 ‘충돌’과 ‘상충’의 과정을 동양적 사유의 토대 위에서 자연(自然)스럽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 결과 작업은 하나의 양식이 아닌 다매체와의 ‘융합’적 표현이 되어 다원화된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연구자는 예술은 ‘내’가 개입된 전통의 기반 위에서 ‘자기화(自己化)’되어 새로워져야 한다고 본다.
또한 새로운 예술은 새로운 문화와 맥을 같이 하며 예술과 문화의 생성은 개체간의 충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다고 생각한다. 충돌의 결과물에는 당연히 부스러기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영향을 받은 작가와 경향은 다음과 같다.
시(詩), 서(書), 화(畵)뿐만 아니라 음악과 불교에 조예가 깊었던 당대(唐代) 남종 문인화(南宗 文人畵)의 시조 왕유(王維, 699?~759)의 이상(理想)인 ‘시중화, 화중시(詩中畫, 畫中詩)’/
서화가이자 실학자이며 선불교에 조예가 깊었던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강직한 선비적 태도로써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면모, 그리고 지식인 미술가로써 ‘추사체’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미술, 역사적으로 구축한 점/조선 민화의 해학(諧謔)/그림과 낙서, 장난스런 드로잉을 결합하여 매체간의 경계를 허문 미국화가 사이 톰블리 (Cy Twombly, 1928-2011)의 서정(抒情)과 직관성(直觀性)/인간의 부조리와 정신적 안식처로서의 여성성을 밝고 가벼운 메타포(metaphor)와 사회 참여로 이야기 한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1930-2002)의 대담한 스케일과 색채 구현 등이다.
아울러 동양적 사유를 작업에 차용한 미국의 추상주의미술가 싸이 톰블리를 비평한 롤랑바르트(Roland Barthes)의 예술작품에 있어서 결정되어 지지 않은 모호하고 다중적인 결과물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 아서 단토(Arthur C. Danto)의 ‘미술의 종말 이후의 미술(After The End Of Art)’이 다루는 다원주의 미술에 대한 담론에서 연구자 작업에 대한 현대미술로써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었다.
“詩를 지어 그림으로 그리고 기록으로 남긴다. 꿈결 같은 인생, 인생은 아름답다.”
“Compose poems, do some paintings and put those on record. Being like a dream way, life is beautiful.”[1]
Ⅰ. 작업의 개요
동양화를 문학으로 말하면 “동양화는 시(詩)이다.
내 작업은 유희로부터 시작된다. 시(詩)를 짓는 것이다. 노래하는 것이다.
자작시(自作詩)를 중심으로 하는 문학적 모티브는 작업의 시작점이며, 언어와 이미지로 소통의 매개가 된다.”[2]전통적인 동양인의 삶에 있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에 기반한 언어와 이미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삶에서, ‘내’가 개입된 사건과 상념을 통한 구체적인 이야기(삶, 사랑, 시간),
즉 서술 구조의 내러티브(narrative)로 파생된다. 이를 지(紙), 필(筆), 묵(墨)에 의한 전통문인화(傳統文人畵)의 형식인 ‘서화동원(書畵同源)’의 의미체계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작업형식의 기본맥락이 되어 회화작업에 있어서 자작시를 지어 글씨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는 형태로 나타나며 여기에 현대의 다양한 매체와 기술(media)이 융합된다.
융합을 구현하는 형식의 예는 전통색인 오방색(五方色)과 디지털이미지(digital image)에서 비롯된 형광컬러와의 병치, 그리고 서예형식의 한글, 한자, 영문 글씨와 타이포 그래피(typography)의 병치, 화조화로부터 차용한 소재의 전통적 구현방식과 팝아트적 해석의 병치 등이다.
이러한 연구자의 작업에는 양자가 공존한다. 동양과 서양,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추상과 구상, 물질과 정신, 내부와 외부 세계 등의 요소가 그것이다.
전통적인 아시아의 정서와 가치를 축으로 하여 동서고금(東西古今)을 상충, 융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공감각적 내용들은 작품의 전반적인 특징이 된다.
연구자는 이를 통해 포스트모던을 지나 혼란과 다양성이 융합으로 향하는 이 시대에, 아시아적 정신을 융합의 도구로 삼아 상징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추후 연구자의 동양화에 있어서 현대문인화(現代文人畵)의 ‘융합(融合)적 변용(變容)’의 개진방향은 다음과 같다. 자작시를 기반으로 기존의 동양회화와 차별된 형식적 개념의 융합적 변용으로부터 인문학적 융합과 변용으로의 집중이다. 이는 전통 아시아의 인문학을 축으로 현재의 다양한 양상이 적극적으로 개입된 삶의 가치를 말하는 문화적 개념이다.
연구자는 현대미술의 담론 위에서 노장자(老蔣子)의 ‘도(道)’가 추구하는 무위자연의 천진함과 자유로움의 활기로부터 발현되는 생명력으로, 동양화를 넘어선 동양화를 추구하고자 한다.
이로써 연구자의 작업이 동서고금을 가로지른 문화와 문화의 만남이 되어 삶의 가치를 사유하고 영혼을 움직이는 한편의 ‘시(詩)’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홍지윤의 퓨전동양화’이다.
Ⅱ. 작업에 있어서 본질(本質)적 측면
1. 동양의 사유 체계는 우주와 자연과 삶에 대한 순환적 해석이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자유로움"이 있다. 이는 하나의 연속체인 우주 안에서 자연과 창조의
기본 원리이다. 따라서 자연의 이치에 대한 관심은 표현의 자유로움에 대한 단초가 된다.
연구자의 작업은 자유로움에 대한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사유의 공간적 재현이다.
2. ‘도(道)’의 상대성과 변화개념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정서에 스며있는 문화와 사고의 근간을 이루는 노자의 ‘도’는 인간의 일상적인 인식을 넘어섬으로써 무한을 지시하는 한 편, 동시에 모든 가치와 존재의 근원적 규범이라는 점에서 규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한과 한정, 양면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예술작품은 구상적이고 규정적인 것으로부터 추상 내지 무한에 근접하는 것까지 모두 가능하게 된다.
양면의 것은 하나임을 말하는‘도’는 미학에서 형식배제와 해체의 문제와 동질의 맥락을 이룬다.
3. 동양에서 말하는 '변화(變化)'란 서양의 '변화(change)'와는 다르다.
변(變)이라는 말이 물리적인 현상만을 말한다면 화(化)에는 근원의 변화 또는 아이덴티티의 변화라는 개념이 내재되어 있다.
즉 근원적 변화로 아이덴티티(identity)를 창츨하는 행위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고인(古人)의 가능성을 몸에 익히면서도 그것이 아닌 아이덴티티의 근원적 변화가 일어나는 유기적 생성, 그리고 고법(古法)에 구애됨 없이 자기 자신의 인식을 표현하는 개념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石濤 畵論>에서는 이와 함께 ‘고(古)’/’경(經)’/’권(權)’의 개념을 ‘화(化)'와 연장선상에서 다루는데 '경(經)'과 '권(權)'이란 곧 영원한 변화를 나타내는 말로 예술 행위에 있어서 결여될 수 없는 두 개의 축, 즉 원칙과 상황의 적절한 넘나듦에 대한 의미로 ‘경’과 ‘권’에 대한 논리는 ‘법(法)'과 ‘화('化)'의 의미로 대체된다.[3]
Ⅲ. 융합(融合)적 변용(變容)의 이론(理論)적배경
1) 도가(道家)의무위자연(無爲自然): 노장자(老蔣子)의 허무(虛無), 무위(無爲)의 ‘도(道)’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 以觀其妙,常有欲 以觀其徼,*
此兩者同, 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1장>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하늘과 땅의 시원.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온갖 것의 어머니.
그러므로 언제나 욕심이 없으면 그 신비함을 볼 수 있고, 언제나 욕심이 있으면 그 나타남을 볼 수 있다. 둘 다 근원은 같은 곳. 이름이 다를 뿐 다 신비스러운 것. 신비중의 신비요, 모든 신비의 문이다.[4]
2) 유가(儒家) 의문질빈빈(文質彬彬) :정신과 내용의 일치
‘내용質이 형식文을 넘어서면 거칠게 되고, 형식文이 내용質을 넘어서면 번지르르 해 지니, 형식文과 내용質이 잘 어울리고 나서야 군자다.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논어(論語) [5]
3) 불가(佛家)의원융무애(圓融無楝) – 화엄사상(華嚴思想)
4. 홍지윤 작가만의 꽃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전통화조화(傳統花鳥畵)에서 차용한 꽃입니다.
전통 동양화의 기법 중 하나인 몰골법(沒骨法)으로 단번에 그리며 전통의 오방 색과 디지털 이미지에 등장하는 색인 형광 색을 병치합니다. 이로써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추구하며,
무지개 또는 색동의 이미지등과 함께 내 심볼입니다. 이로써, 내가 추구하는 융합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것으로서의 꽃이 됩니다.
(세상의 모든 꽃들, 210x150cm, 장지 위에 수묵채색, 2007 참고)
5. 융합의 의미를 담고 있는 꽃을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신다면요?
원융무애의 꽃입니다.
어떤 사상이나 편견에 걸림 없이 이(理)와 사(事)가 한결같이 평등하다는 의미입니다.
부처의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불교의 화엄사상에서 ‘화엄(華嚴)’의 ‘화(華)’자에는 ‘꽃이 피다’,’빛’의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화엄종의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에는 일체의 만상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고, 한 사물이 일체만물과 인연이 되어 서로 의지하고 원융무애한 관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6]
Ⅳ.
삶에 고하는 Message
多 彩 人 生 喜 怒 哀 樂 靑 赤 黑 白 黃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맑고도 푸른 한 줌의 물
Fistful of clear blue water slipping through each finger
현상 너머의 현상, 꿈 너머의 꿈 사랑 너머의 사랑.
구름 너머의 구름, 꽃 너머의 꽃, 새 너머의 새, 사람 너머의 사람.
그 모든 것들이 하나라고 하는 사실이 우리의 눈에는 절대로 하나로 보이지 않는다.
하여 화가인 나는 그 모든 것에 가장 가까운 친숙한 형상을 빌어
결국에는 하나인 것을 환영으로 증명하려는 것이다. 섞이지 않는 것들을 섞으려 하는 것이다.
구름이 꽃으로, 꽃이 새로, 새가 사람으로, 사람이 사랑으로, 사랑이 꿈으로,
시가 글씨로, 글씨가 그림으로 보이게 한다거나 또는 느끼게 한다거나.
그 반대이거나. 그 모두이거나.
때로는 거절하고도 싶은 존재와 부재, 교합과 부정교합에 대한 진실에 고하는 메시지를
수 없이 쓰고 또 쓰고 싶은 것이다.
이름하여 꿈꾸는 것이다. 꿈속에 나타난 꿈을 좇듯.
그림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모두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이러한 변증의 작용이 낯설고 팽팽한 불화(不和)의 긴장으로 울림이 되고
이러한 모순이 바로 인생임을 말하고 당신과 내 삶의 에너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7]
Ⅴ.
개인전 주제내용 분류 별 작품 (2001-2010) – 회화 / 사진 / 설치 / 퍼포먼스 / 공공미술
2010 다채인생 (多彩人生) Life is colorful (표갤러리/서울)
2009 활보 (闊步) with big stride (gallery TN / 북경 따산즈/중국)
2008 Bohemian Edition (갤러리 나우/서울)
2008 염색적 향기(染色的香氣)Dyeing fragrance (798 cup gallery/북경 따산즈/중국)
2008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더갤러리/서울)
2007 음유 낭만 환상Minstrel, Romance, and Fantasy (문화일보갤러리/서울)
2006 Four Friends from Oriental to Germany (Munich City Hall Gallery / Munich Culture Department/독일)
2005 사계(四季)Four season (아트포럼뉴게이트/서울)
2005 Hongjiyoon's Art meets Digital (Kunst-direkt gallery/Regensburg 독일)
2003 움직이는 思惟 : ‘붕(鵬)’ Moving Speculation : The ‘Peng' (한전프라자갤러리/서울)
2001/2003 Firenze Biennale ‘思惟의 집’/‘思惟- 점 그리고 편지’ (historic fortezza da Basso / Firenze /이탈리아)
Ⅵ. 批評文
…… 누군가 ‘인생의 겨울에 봄은 없다’고 말했다. 봄날 아지랑이를 보듯, 써 내려간 듯 얹어 놓은 자유롭고도 유연한 홍지윤의 붓질은 작가 특유의 자유로운 영혼을 자신의 삶에, 우리네 고독한 영혼과 고단한 삶에 전하는 희망의 몸짓에 다름 아니다. 시(詩)·서(書)·화(畵)의 현대적 외화에 능한 작가의 자유로운 영혼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주관과 객관을 종합하는 홍지윤의 숨바꼭질은 꿈의 무지개가 필 때까지, 우리네 삶이 활짝 피어날 때까지,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세상 가득 총천연색 무지개를 펼쳐 보일 것이다……..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Life is colorful...’ 개인전 서문발췌2010
…… 방향이 정해진 이상 홍지윤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마치 비빔밥과도 같다. 사발의 맨 밑바닥에 밥이 있고 그 위에 다양한 나물과 고명을 얹는다. 밥이 동양 혹은 한국의 정신이라면, 그 위에 얹는 나물이 동양의 것이 됐던 서양의 것이 됐던 무슨 상관이랴.
또 사진이면 어떻고 퍼포먼스면 어떠랴. 매체에 자유롭고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다. 다양한 이미지와 글씨, 사진이 한데 어울려 컴퓨터의 합성을 통해 중첩된다. 그것은 마치 각양각색의 금속품을 넣어 제련하는 용광로와도 같다. 그것이 바로 퓨전이 아닌가. 생활 속에서 발견한 사물의 모습에 대한 단상을 비롯하여 사랑에 관한 시, 새, 꽃, 여인의 아름다운 이미지, 독창적인 칼리그래피로 쓴 한글, 한문, 영자 등등 한데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그것은 매우 화려한 세계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하다. 시각적으로 강할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강렬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 국제평론가협회부회장)
/ ‘문화의 비빕밥-홍지윤의 퓨전 동양화’ Bohemian Edition 개인전 서문발췌 2008
전통의 방법을 막연히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이기에 고수하고 있는 먹과 종이. 그런 그를 두고 화선지 위에 먹과 붓으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넣었으니 굳이 옛 문헌이나 기록에 의존한다면 현대판 문인화라고 끼워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시를 짓고, 그림으로 노래하는 홍지윤은 문인보단 이 시대의 예술쟁이로, 퓨전 동양화보단 포스트 동양화로 더 질펀하고 더 폭넓게 제대로 놀아주길 희망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마치 장자의 우화에서 나온 이야기 소요유消遙遊와 같다. …..이런 유희는 자발적이며 신명 나는 유희이다.
내가 홍지윤의 그림을 보며 '한 판 논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그러니 어쩌면 홍지윤은 이미 삶과 사랑을 치열함을 넘어서 소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김최은영, 미학 / # 홍지윤, 삶과 사랑을 소요하다. ‘인생은 아름다워’ 개인전 서문발췌 2008
......... 홍지윤의 작업은 시상詩想 에서 출발한다. ……. 현실적 인간세계에 대한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인식과 느낌이고 동경과 집착이다. 여기에는 일종의 풍성하고 젊은 정열과 상상이 스며들어 있다. 설사 낙심, 우울, 슬픔에 대해 묘사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역시 젊음, 자유, 기쁨의 기운이 약동하고 있다. 그 기운은 글과, 글을 담은 글씨와, 글씨를 벗한 그림을 통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렇게 작품은 운율韻律을 담는다…………홍지윤의 작업은 이렇듯 텍스트와 이미지가 상충한다. 또한 먹과 현대의 안료가 상충한다. 종이와 미디어 역시 충돌한다. 이 다층적인 충돌은 작업 전면의 적절한 장치와 구조를 통해 해결되고 화해함으로써 홍지윤의 퓨전동양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문화적 선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윤진, 前 문화일보갤러리, 現 롯데 갤러리 큐레이터 / ‘음유낭만환상’ 개인전 서문발췌 2007
...... 문인화적 모색은 홍지윤의 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그만의 조형적 시각과 다양한 재료의 혼용으로 시, 서, 화 일치를 시도한다. 시, 서, 화와 지필묵의 전통이 등장하고 미디어(영상/그래픽)를 통해 때때로 재구성되기도 한다. 이를 테면 부분적으로 칼리그래프(서예)가 타이포그라프의 형식으로 보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사이에서 글씨와 그림이 흘러간다. 여기로 그린 그림처럼 자유로운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서 서예나 시의 요소가 홍지윤의 회화에서는 필요하다. 이는 전통에 대한 재해석이라거나 새로운 어떤 것에 대한 비약적 논리가 아니라 작가가 할 수 있는 익숙하고 즐거운 작업의 특색이고 특징이라고 홍지윤은 말한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는 행위를 통해 문인적 취미와 작가적 의식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그의 그림에 보이는 화려한 형광 색은 전통적인 오방색 이라기보다는 텔레비전 화면조절용 컬러배열처럼 보이며 전통 회화의 시간적 측면은 영상적업을 통해 친밀하게 보여 지고 있다........
임종은, 동양미학 / 감각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신세대 작가
(전통을 넘어선 새로움 움직임) 월간미술 6월호 Special feature 2007
......수묵과 그래픽영상이란 도대체 어떤 관계를 지닐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물음에 앞서 그의 실험은 경쾌한 진행을 보여주고 이와 같은 의문을 부단히 불식시키는 매력이 있다. "나의 수묵 애니매이션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따뜻하게 손을 잡은 모습"이란 작가의 말처럼 어색함이 보이지 않는다. ...... 그가 하고 있는 기본은 전통적인 수묵이다. 단지 이를 다시 영상으로 프로그래밍화 하였다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작가는 "전통적인 동양화가 지금에 있어서 어떠한 방법으로 재해석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라고 자신의 실험에 대한 정의를 이끌어 낸다...(중략)..... 홍지윤 의 수묵과 영상매체를 결합시켰다는 것은 일견 기발한 착상이 될 수 있고 수묵화의 존재방식에 대한 나름의 제안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_
오광수, 미술비평 / 월간아트인컬쳐 4월호-FOCUS 한국화의 다양한 매체실험 2005
[1] 2008 개인전: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주제 0304 ▶0329 (더 갤러리 기획 초대전/서울/한국)
[2] 2008 개인전 작가 note
[3] 김용옥 저, 석도화론 (도올이 백남준을 만난 이야기),통나무, 1992 P.58-59 <變化章第三>요약
* 요(徼)-결과. 밖으로 나타난 현상 세계. 묘(妙)와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다. 이 구절은 “常無欲 以觀其妙;常有欲 以觀其徼”로 띄어서 읽는 방법과 “常無 欲以…常有 欲以….”로 띄어서 읽는 법이 있다. 후자는 “그 영원한 없음(無)에서 그 신비함을 보고자 하고, 그 영원한 있음(有)에서 그 나타남을 보고자 한다.”로 풀 수 있다.
전자는 왕필, 하상공 등의 전통적 해석 방법이고, 후자는 왕안석 등 후대 사람들이 채택한 방법이다.
[4] 오강남 (교수), 노자(철학자) 저,현암사, 1995, P.19-20
[5] 김미경, 황상희 공저, 우리그림, KARI아시아학술총서01 2008 발췌 P. 63
[6] Seoul Auction Artist Talk Show on Tweeter 서울옥션 아티스트 토크쇼 (@ArtistTalkShow) - 2011. 10.12 홍지윤 작가 인터뷰 발췌
[7]2010 개인전 : Life is colorful 주제 2010_0309 ▶ 2010_0423 (표 갤러리 기획 초대전/서울/한국
동양화에 있어서 현대문인화(現代文人畵)의 융합(融合)적 변용(變容)에 대한 연구
<홍지윤의 퓨전동양화>를 中心으로
<<문제제기와 목적>>
미술조형의 문제 : 혼성과 융합의 현대 동양화
미술기능의 문제 : 현대미술에서 동양화의 위치 - 동양정신이 강조된 미술
‘Fusion’ (A fusion of different qualities, ideas, or things is something new that is created
by joining them together) 이란 융합, 또는 결합을 의미하며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을 섞어 새롭게 만든 것, 그리고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하여지거나 그렇게 만듦, 또는 그런 일을 말한다. 서로 섞이면 혼합이 일어난다. 서로 혼성된 각 요소들은 여전히 본래의 기질들을 지니고 있지만, 합체로 인해 기존의 상태에서는 불가능했던 풍부함과 다양성을 얻는다.
동양의 전통 사상인 음양론(陰陽論)은 사물을 포함한 자연계의 만물에는
흔히 음(陰)과 양(陽)이라고 부르는 양자가 서로 상대성을 지니고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둘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서로 공유하고 순환하여 하나를 이루게 된다고 했다. 연구자는 작업에 있어서 이를 실험하고 그것을 연구자가 추구하는 현대동양화의 지점으로
삼기로 했다. 전통 채색과 수묵실험 이후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퓨전동양화’의
단초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연구자는 언제나 삶의 과정에서 서로 상반된 것들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무거움과 가벼움, 아날로그와 디지털 등이다.
한 우물만 파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했던 근대주의적 미술환경과 그 안에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 분석적인 사고보다는 초월적이고 직관적인 사고를 중히 여겨온 동양화의 담론, 그런 동양화가 가져야 할 한국성의 문제 제기들이 당시 연구자 주변의 모습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연구자가 개입된 동양화를 어떻게 현대미술에 개입하도록 할 것인가라는 미술기능의 문제와 혼성적 사고의 특성을 가진 연구자가 만든 미술을
어떻게 현대미술담론의 내부에 안착시킬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연구자는 국제적인 천주교 재단(Sacred Heart)인 성심여학교에서 국제학교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했던 유년을 보냈고, 패션디자이너였던 어머니로부터 서구적인 영향을 받고 자랐다.
그리고 동양화를 전공했다. 연구자에게 이처럼 혼성된 자아와, 반만년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미국의 식민지문화를 공유하는 혼재된 한국은 다르지 않았다.
연구자는 이 둘을 내면에 존재하는 하나의 거울에 넣어놓고 관찰했다.
관찰의 방법은 이분법적 사유가 아닌, 나와 개체를 동일하게 인식하는 순환적 체계의 동양적 사유였다. 이로써 한국성과 연구자의 미술을 동양적 사유에 기반 한 ‘혼성’과 ‘융합’으로 정의하게 되었다. 연구자는 이를 동양화 전공자이자 미술가인 연구자의 미술조형과 기능의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순환적 인식의 과정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주제와 매체간의 ‘충돌’과 ‘상충’의 과정을 동양적 사유의 토대 위에서 자연(自然)스럽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 결과 작업은 하나의 양식이 아닌 다매체와의 ‘융합’적 표현이 되어 다원화된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연구자는 예술은 ‘내’가 개입된 전통의 기반 위에서 ‘자기화(自己化)’되어 새로워져야 한다고 본다.
또한 새로운 예술은 새로운 문화와 맥을 같이 하며 예술과 문화의 생성은 개체간의 충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다고 생각한다. 충돌의 결과물에는 당연히 부스러기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영향을 받은 작가와 경향은 다음과 같다.
시(詩), 서(書), 화(畵)뿐만 아니라 음악과 불교에 조예가 깊었던 당대(唐代) 남종 문인화(南宗 文人畵)의 시조 왕유(王維, 699?~759)의 이상(理想)인 ‘시중화, 화중시(詩中畫, 畫中詩)’/
서화가이자 실학자이며 선불교에 조예가 깊었던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강직한 선비적 태도로써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면모, 그리고 지식인 미술가로써 ‘추사체’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미술, 역사적으로 구축한 점/조선 민화의 해학(諧謔)/그림과 낙서, 장난스런 드로잉을 결합하여 매체간의 경계를 허문 미국화가 사이 톰블리 (Cy Twombly, 1928-2011)의 서정(抒情)과 직관성(直觀性)/인간의 부조리와 정신적 안식처로서의 여성성을 밝고 가벼운 메타포(metaphor)와 사회 참여로 이야기 한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1930-2002)의 대담한 스케일과 색채 구현 등이다.
아울러 동양적 사유를 작업에 차용한 미국의 추상주의미술가 싸이 톰블리를 비평한 롤랑바르트(Roland Barthes)의 예술작품에 있어서 결정되어 지지 않은 모호하고 다중적인 결과물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 아서 단토(Arthur C. Danto)의 ‘미술의 종말 이후의 미술(After The End Of Art)’이 다루는 다원주의 미술에 대한 담론에서 연구자 작업에 대한 현대미술로써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었다.
“詩를 지어 그림으로 그리고 기록으로 남긴다. 꿈결 같은 인생, 인생은 아름답다.”
“Compose poems, do some paintings and put those on record. Being like a dream way, life is beautiful.”[1]
Ⅰ. 작업의 개요
동양화를 문학으로 말하면 “동양화는 시(詩)이다.
내 작업은 유희로부터 시작된다. 시(詩)를 짓는 것이다. 노래하는 것이다.
자작시(自作詩)를 중심으로 하는 문학적 모티브는 작업의 시작점이며, 언어와 이미지로 소통의 매개가 된다.”[2]전통적인 동양인의 삶에 있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에 기반한 언어와 이미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삶에서, ‘내’가 개입된 사건과 상념을 통한 구체적인 이야기(삶, 사랑, 시간),
즉 서술 구조의 내러티브(narrative)로 파생된다. 이를 지(紙), 필(筆), 묵(墨)에 의한 전통문인화(傳統文人畵)의 형식인 ‘서화동원(書畵同源)’의 의미체계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작업형식의 기본맥락이 되어 회화작업에 있어서 자작시를 지어 글씨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는 형태로 나타나며 여기에 현대의 다양한 매체와 기술(media)이 융합된다.
융합을 구현하는 형식의 예는 전통색인 오방색(五方色)과 디지털이미지(digital image)에서 비롯된 형광컬러와의 병치, 그리고 서예형식의 한글, 한자, 영문 글씨와 타이포 그래피(typography)의 병치, 화조화로부터 차용한 소재의 전통적 구현방식과 팝아트적 해석의 병치 등이다.
이러한 연구자의 작업에는 양자가 공존한다. 동양과 서양,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추상과 구상, 물질과 정신, 내부와 외부 세계 등의 요소가 그것이다.
전통적인 아시아의 정서와 가치를 축으로 하여 동서고금(東西古今)을 상충, 융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공감각적 내용들은 작품의 전반적인 특징이 된다.
연구자는 이를 통해 포스트모던을 지나 혼란과 다양성이 융합으로 향하는 이 시대에, 아시아적 정신을 융합의 도구로 삼아 상징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추후 연구자의 동양화에 있어서 현대문인화(現代文人畵)의 ‘융합(融合)적 변용(變容)’의 개진방향은 다음과 같다. 자작시를 기반으로 기존의 동양회화와 차별된 형식적 개념의 융합적 변용으로부터 인문학적 융합과 변용으로의 집중이다. 이는 전통 아시아의 인문학을 축으로 현재의 다양한 양상이 적극적으로 개입된 삶의 가치를 말하는 문화적 개념이다.
연구자는 현대미술의 담론 위에서 노장자(老蔣子)의 ‘도(道)’가 추구하는 무위자연의 천진함과 자유로움의 활기로부터 발현되는 생명력으로, 동양화를 넘어선 동양화를 추구하고자 한다.
이로써 연구자의 작업이 동서고금을 가로지른 문화와 문화의 만남이 되어 삶의 가치를 사유하고 영혼을 움직이는 한편의 ‘시(詩)’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홍지윤의 퓨전동양화’이다.
Ⅱ. 작업에 있어서 본질(本質)적 측면
1. 동양의 사유 체계는 우주와 자연과 삶에 대한 순환적 해석이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자유로움"이 있다. 이는 하나의 연속체인 우주 안에서 자연과 창조의
기본 원리이다. 따라서 자연의 이치에 대한 관심은 표현의 자유로움에 대한 단초가 된다.
연구자의 작업은 자유로움에 대한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사유의 공간적 재현이다.
2. ‘도(道)’의 상대성과 변화개념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정서에 스며있는 문화와 사고의 근간을 이루는 노자의 ‘도’는 인간의 일상적인 인식을 넘어섬으로써 무한을 지시하는 한 편, 동시에 모든 가치와 존재의 근원적 규범이라는 점에서 규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한과 한정, 양면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예술작품은 구상적이고 규정적인 것으로부터 추상 내지 무한에 근접하는 것까지 모두 가능하게 된다.
양면의 것은 하나임을 말하는‘도’는 미학에서 형식배제와 해체의 문제와 동질의 맥락을 이룬다.
3. 동양에서 말하는 '변화(變化)'란 서양의 '변화(change)'와는 다르다.
변(變)이라는 말이 물리적인 현상만을 말한다면 화(化)에는 근원의 변화 또는 아이덴티티의 변화라는 개념이 내재되어 있다.
즉 근원적 변화로 아이덴티티(identity)를 창츨하는 행위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고인(古人)의 가능성을 몸에 익히면서도 그것이 아닌 아이덴티티의 근원적 변화가 일어나는 유기적 생성, 그리고 고법(古法)에 구애됨 없이 자기 자신의 인식을 표현하는 개념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石濤 畵論>에서는 이와 함께 ‘고(古)’/’경(經)’/’권(權)’의 개념을 ‘화(化)'와 연장선상에서 다루는데 '경(經)'과 '권(權)'이란 곧 영원한 변화를 나타내는 말로 예술 행위에 있어서 결여될 수 없는 두 개의 축, 즉 원칙과 상황의 적절한 넘나듦에 대한 의미로 ‘경’과 ‘권’에 대한 논리는 ‘법(法)'과 ‘화('化)'의 의미로 대체된다.[3]
Ⅲ. 융합(融合)적 변용(變容)의 이론(理論)적배경
1) 도가(道家)의무위자연(無爲自然): 노장자(老蔣子)의 허무(虛無), 무위(無爲)의 ‘도(道)’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 以觀其妙,常有欲 以觀其徼,*
此兩者同, 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1장>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하늘과 땅의 시원.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온갖 것의 어머니.
그러므로 언제나 욕심이 없으면 그 신비함을 볼 수 있고, 언제나 욕심이 있으면 그 나타남을 볼 수 있다. 둘 다 근원은 같은 곳. 이름이 다를 뿐 다 신비스러운 것. 신비중의 신비요, 모든 신비의 문이다.[4]
2) 유가(儒家) 의문질빈빈(文質彬彬) :정신과 내용의 일치
‘내용質이 형식文을 넘어서면 거칠게 되고, 형식文이 내용質을 넘어서면 번지르르 해 지니, 형식文과 내용質이 잘 어울리고 나서야 군자다.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논어(論語) [5]
3) 불가(佛家)의원융무애(圓融無楝) – 화엄사상(華嚴思想)
4. 홍지윤 작가만의 꽃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전통화조화(傳統花鳥畵)에서 차용한 꽃입니다.
전통 동양화의 기법 중 하나인 몰골법(沒骨法)으로 단번에 그리며 전통의 오방 색과 디지털 이미지에 등장하는 색인 형광 색을 병치합니다. 이로써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추구하며,
무지개 또는 색동의 이미지등과 함께 내 심볼입니다. 이로써, 내가 추구하는 융합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것으로서의 꽃이 됩니다.
(세상의 모든 꽃들, 210x150cm, 장지 위에 수묵채색, 2007 참고)
5. 융합의 의미를 담고 있는 꽃을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신다면요?
원융무애의 꽃입니다.
어떤 사상이나 편견에 걸림 없이 이(理)와 사(事)가 한결같이 평등하다는 의미입니다.
부처의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불교의 화엄사상에서 ‘화엄(華嚴)’의 ‘화(華)’자에는 ‘꽃이 피다’,’빛’의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화엄종의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에는 일체의 만상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고, 한 사물이 일체만물과 인연이 되어 서로 의지하고 원융무애한 관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6]
Ⅳ.
삶에 고하는 Message
多 彩 人 生 喜 怒 哀 樂 靑 赤 黑 白 黃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맑고도 푸른 한 줌의 물
Fistful of clear blue water slipping through each finger
현상 너머의 현상, 꿈 너머의 꿈 사랑 너머의 사랑.
구름 너머의 구름, 꽃 너머의 꽃, 새 너머의 새, 사람 너머의 사람.
그 모든 것들이 하나라고 하는 사실이 우리의 눈에는 절대로 하나로 보이지 않는다.
하여 화가인 나는 그 모든 것에 가장 가까운 친숙한 형상을 빌어
결국에는 하나인 것을 환영으로 증명하려는 것이다. 섞이지 않는 것들을 섞으려 하는 것이다.
구름이 꽃으로, 꽃이 새로, 새가 사람으로, 사람이 사랑으로, 사랑이 꿈으로,
시가 글씨로, 글씨가 그림으로 보이게 한다거나 또는 느끼게 한다거나.
그 반대이거나. 그 모두이거나.
때로는 거절하고도 싶은 존재와 부재, 교합과 부정교합에 대한 진실에 고하는 메시지를
수 없이 쓰고 또 쓰고 싶은 것이다.
이름하여 꿈꾸는 것이다. 꿈속에 나타난 꿈을 좇듯.
그림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모두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이러한 변증의 작용이 낯설고 팽팽한 불화(不和)의 긴장으로 울림이 되고
이러한 모순이 바로 인생임을 말하고 당신과 내 삶의 에너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7]
Ⅴ.
개인전 주제내용 분류 별 작품 (2001-2010) – 회화 / 사진 / 설치 / 퍼포먼스 / 공공미술
2010 다채인생 (多彩人生) Life is colorful (표갤러리/서울)
2009 활보 (闊步) with big stride (gallery TN / 북경 따산즈/중국)
2008 Bohemian Edition (갤러리 나우/서울)
2008 염색적 향기(染色的香氣)Dyeing fragrance (798 cup gallery/북경 따산즈/중국)
2008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더갤러리/서울)
2007 음유 낭만 환상Minstrel, Romance, and Fantasy (문화일보갤러리/서울)
2006 Four Friends from Oriental to Germany (Munich City Hall Gallery / Munich Culture Department/독일)
2005 사계(四季)Four season (아트포럼뉴게이트/서울)
2005 Hongjiyoon's Art meets Digital (Kunst-direkt gallery/Regensburg 독일)
2003 움직이는 思惟 : ‘붕(鵬)’ Moving Speculation : The ‘Peng' (한전프라자갤러리/서울)
2001/2003 Firenze Biennale ‘思惟의 집’/‘思惟- 점 그리고 편지’ (historic fortezza da Basso / Firenze /이탈리아)
Ⅵ. 批評文
…… 누군가 ‘인생의 겨울에 봄은 없다’고 말했다. 봄날 아지랑이를 보듯, 써 내려간 듯 얹어 놓은 자유롭고도 유연한 홍지윤의 붓질은 작가 특유의 자유로운 영혼을 자신의 삶에, 우리네 고독한 영혼과 고단한 삶에 전하는 희망의 몸짓에 다름 아니다. 시(詩)·서(書)·화(畵)의 현대적 외화에 능한 작가의 자유로운 영혼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주관과 객관을 종합하는 홍지윤의 숨바꼭질은 꿈의 무지개가 필 때까지, 우리네 삶이 활짝 피어날 때까지,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세상 가득 총천연색 무지개를 펼쳐 보일 것이다……..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Life is colorful...’ 개인전 서문발췌2010
…… 방향이 정해진 이상 홍지윤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마치 비빔밥과도 같다. 사발의 맨 밑바닥에 밥이 있고 그 위에 다양한 나물과 고명을 얹는다. 밥이 동양 혹은 한국의 정신이라면, 그 위에 얹는 나물이 동양의 것이 됐던 서양의 것이 됐던 무슨 상관이랴.
또 사진이면 어떻고 퍼포먼스면 어떠랴. 매체에 자유롭고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다. 다양한 이미지와 글씨, 사진이 한데 어울려 컴퓨터의 합성을 통해 중첩된다. 그것은 마치 각양각색의 금속품을 넣어 제련하는 용광로와도 같다. 그것이 바로 퓨전이 아닌가. 생활 속에서 발견한 사물의 모습에 대한 단상을 비롯하여 사랑에 관한 시, 새, 꽃, 여인의 아름다운 이미지, 독창적인 칼리그래피로 쓴 한글, 한문, 영자 등등 한데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그것은 매우 화려한 세계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하다. 시각적으로 강할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강렬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 국제평론가협회부회장)
/ ‘문화의 비빕밥-홍지윤의 퓨전 동양화’ Bohemian Edition 개인전 서문발췌 2008
전통의 방법을 막연히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이기에 고수하고 있는 먹과 종이. 그런 그를 두고 화선지 위에 먹과 붓으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넣었으니 굳이 옛 문헌이나 기록에 의존한다면 현대판 문인화라고 끼워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시를 짓고, 그림으로 노래하는 홍지윤은 문인보단 이 시대의 예술쟁이로, 퓨전 동양화보단 포스트 동양화로 더 질펀하고 더 폭넓게 제대로 놀아주길 희망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마치 장자의 우화에서 나온 이야기 소요유消遙遊와 같다. …..이런 유희는 자발적이며 신명 나는 유희이다.
내가 홍지윤의 그림을 보며 '한 판 논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그러니 어쩌면 홍지윤은 이미 삶과 사랑을 치열함을 넘어서 소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김최은영, 미학 / # 홍지윤, 삶과 사랑을 소요하다. ‘인생은 아름다워’ 개인전 서문발췌 2008
......... 홍지윤의 작업은 시상詩想 에서 출발한다. ……. 현실적 인간세계에 대한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인식과 느낌이고 동경과 집착이다. 여기에는 일종의 풍성하고 젊은 정열과 상상이 스며들어 있다. 설사 낙심, 우울, 슬픔에 대해 묘사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역시 젊음, 자유, 기쁨의 기운이 약동하고 있다. 그 기운은 글과, 글을 담은 글씨와, 글씨를 벗한 그림을 통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렇게 작품은 운율韻律을 담는다…………홍지윤의 작업은 이렇듯 텍스트와 이미지가 상충한다. 또한 먹과 현대의 안료가 상충한다. 종이와 미디어 역시 충돌한다. 이 다층적인 충돌은 작업 전면의 적절한 장치와 구조를 통해 해결되고 화해함으로써 홍지윤의 퓨전동양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문화적 선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윤진, 前 문화일보갤러리, 現 롯데 갤러리 큐레이터 / ‘음유낭만환상’ 개인전 서문발췌 2007
...... 문인화적 모색은 홍지윤의 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그만의 조형적 시각과 다양한 재료의 혼용으로 시, 서, 화 일치를 시도한다. 시, 서, 화와 지필묵의 전통이 등장하고 미디어(영상/그래픽)를 통해 때때로 재구성되기도 한다. 이를 테면 부분적으로 칼리그래프(서예)가 타이포그라프의 형식으로 보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사이에서 글씨와 그림이 흘러간다. 여기로 그린 그림처럼 자유로운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서 서예나 시의 요소가 홍지윤의 회화에서는 필요하다. 이는 전통에 대한 재해석이라거나 새로운 어떤 것에 대한 비약적 논리가 아니라 작가가 할 수 있는 익숙하고 즐거운 작업의 특색이고 특징이라고 홍지윤은 말한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는 행위를 통해 문인적 취미와 작가적 의식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그의 그림에 보이는 화려한 형광 색은 전통적인 오방색 이라기보다는 텔레비전 화면조절용 컬러배열처럼 보이며 전통 회화의 시간적 측면은 영상적업을 통해 친밀하게 보여 지고 있다........
임종은, 동양미학 / 감각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신세대 작가
(전통을 넘어선 새로움 움직임) 월간미술 6월호 Special feature 2007
......수묵과 그래픽영상이란 도대체 어떤 관계를 지닐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물음에 앞서 그의 실험은 경쾌한 진행을 보여주고 이와 같은 의문을 부단히 불식시키는 매력이 있다. "나의 수묵 애니매이션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따뜻하게 손을 잡은 모습"이란 작가의 말처럼 어색함이 보이지 않는다. ...... 그가 하고 있는 기본은 전통적인 수묵이다. 단지 이를 다시 영상으로 프로그래밍화 하였다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작가는 "전통적인 동양화가 지금에 있어서 어떠한 방법으로 재해석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라고 자신의 실험에 대한 정의를 이끌어 낸다...(중략)..... 홍지윤 의 수묵과 영상매체를 결합시켰다는 것은 일견 기발한 착상이 될 수 있고 수묵화의 존재방식에 대한 나름의 제안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_
오광수, 미술비평 / 월간아트인컬쳐 4월호-FOCUS 한국화의 다양한 매체실험 2005
[1] 2008 개인전: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주제 0304 ▶0329 (더 갤러리 기획 초대전/서울/한국)
[2] 2008 개인전 작가 note
[3] 김용옥 저, 석도화론 (도올이 백남준을 만난 이야기),통나무, 1992 P.58-59 <變化章第三>요약
* 요(徼)-결과. 밖으로 나타난 현상 세계. 묘(妙)와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다. 이 구절은 “常無欲 以觀其妙;常有欲 以觀其徼”로 띄어서 읽는 방법과 “常無 欲以…常有 欲以….”로 띄어서 읽는 법이 있다. 후자는 “그 영원한 없음(無)에서 그 신비함을 보고자 하고, 그 영원한 있음(有)에서 그 나타남을 보고자 한다.”로 풀 수 있다.
전자는 왕필, 하상공 등의 전통적 해석 방법이고, 후자는 왕안석 등 후대 사람들이 채택한 방법이다.
[4] 오강남 (교수), 노자(철학자) 저,현암사, 1995, P.19-20
[5] 김미경, 황상희 공저, 우리그림, KARI아시아학술총서01 2008 발췌 P. 63
[6] Seoul Auction Artist Talk Show on Tweeter 서울옥션 아티스트 토크쇼 (@ArtistTalkShow) - 2011. 10.12 홍지윤 작가 인터뷰 발췌
[7]2010 개인전 : Life is colorful 주제 2010_0309 ▶ 2010_0423 (표 갤러리 기획 초대전/서울/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