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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지 윤 의 思惟

작성자
hongjiyoon
작성일
2015-02-25 04:49
조회
590
■ 작품의 개념

동양에서 말하는 '변화(變化)'란 서양의 '변화(change)'와는 다르다. 변(變)이라는 말이 물리적인 현상만을 말한다면 화(化)에는 근원의 변화 또는 아이덴티티의 변화라는 개념이 내재되어 있다. 즉 근원적 변화로 아이덴티티를 창츨 하는 행위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고인古人의 가능성을 몸에 익히면서도 그것이 아닌 아이덴티티의 근원적 변화가 일어나는 유기적 생성 그리고 고법古法에 구애됨 없이 자기 자신의 인식을 표현하는 개념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石濤 畵論>에서는 이와 함께 고 古 /경 經/권 權의 개념을 화'化'와의 연장선상에서 다루는데 '경'과'권'이란 곧 영원한 변화를 나타내는 말로 예술 행위에 있어서 결여될 수 없는 두개의 축 ,즉 원칙과 상황의 적절한 넘나듦에 대한 의미로 경과 권에 대한 논리는 법'法'과 화'化'의 의미로 대체되는 것이다.


■ 작업의 의도

보수적 전통을 따르면서 실험을 모색한다는 예술에 대한 오래된 규율은 과장된 반어법과 행동주의적 양식이 주를 이루는 오늘에 있어서 오히려 난해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오래된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마음에 두고 잔가지를 쳐 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의 사유 체계나 생활 양식에 있어서 또는 표현의 양식에 있어서 오래된 규칙 내지는 습관이란 우주와 자연에 대한 해석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해석의 기반을 자유로움의 구가라고 본다. 자유로움이란 무엇인가. 말하지 않고 안으로 축적되는 자연의 창조력과 같은 힘이다. 작업에서 일관된 주체로 자리하는 '사유'라는 말에는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을 통하여 아직 경험하지 않은 객관적 사실을 미루어 보는 능력이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 내지는 객관적 사실이란 위에서 언급한 자연을 대하는 자유로움이 내재되어 있으며 그것이 근거를 이룬다. 즉 내가 말하는 사유란 오래된 사유가 곧 영원한 사유이며 자유로움 안에 내재된 다중적 사유를 말하는 것이다. 3회 개인전(“思惟의 門”‘99보다갤러리)에서 나는 작업을 대하는 태도와 표현의 방법을 자연의 簡素함과 單純함이라고 설정, 자연의 형상을 동양적 사유체계에 담아 수묵추상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에서 명명한 “思惟의 門”은 개인적인 내면의 심상과 풍경적 자연인 외부가 만나 하나가 되기 위한과정 내지는 통과장치의 의미를 가지며 일상의 경험에의한 자연의 형태를 먹과 여백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어 4회 개인전(“思惟의 風景”‘99 그림시갤러리) 에서는 풍경의 요인에 있어서 전체일 수 있는 부분적 요소와 부분적일 수 있는 전체의 요소가 더욱 부각될 수 있기 위한 자연을 심화하여 형상화 하였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배경 위에서 “스스로 그러한 ” 말 그대로 自然스러운 상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며 작품 안에서의 공간감이 표현의 주를 이루는 여백과 먹의 의미를 부정과 긍정, 소극과 적극, 음陰과 양陽,negative와 affirmative로 해석한다. 이는 작업자인 내가 인위적인 equalizer가 되어 화면상의 조율을 꾀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나는 앞서 동양의 사유 체계를 우주와 자연에 대한 해석으로 보고 그 기반을“자유로움의 구가”라고 설정하였다. 이는 하나의 연속체인 우주안에서의 자연과 창조의 기본 원리이다. 따라서 보편 자연의 이치에 대한 관심은 표현의 자유로움에 대한 단초가 된다. 이러한 바탕위에서 2001 피렌체 비엔날레(historic fortezza da Basso in florence-Italy)와 2002 파리트리엔날레(TOIT de la Grand Arche-Paris-La DEFFENSE-France)에서의 출품작인 (사유의 집-어머니를 위하여)와 (고백-세겹의 휘장)은 앞서 제시한 자유로운 사유의 공간적 재현이다.

5회 개인전 (움직이는 思惟, 큰새“붕(鵬)”2003 한전프라자갤러리)
水墨東洋畵 animation은 동양적 사유와 개인적 삶의 문제- 인간적 고독孤獨을 표현한 작업으로 자유로운 사유에 이르는 방법을 영상화 하여 제시한 것이다. 내면에서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유를 가시화 하여“움직이는 사유”또는“움직이는 수묵그림” 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표현 방법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수묵그림(1998-2003)위에 새를 그려넣어 자유로움에 대한 상징물로 또는 실현해야 할 삶의 과제-전통을 뛰어넘어 나와 시간으로부터 객관화 되어 육중하지 않은 의미의 삶과 그림- 를 표현한 것이다. “움직이는 사유” 또는“움직이는 수묵그림”의 관건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여러 가지 효과가 아니라 내용과 표현의 적합성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이는 예술에서, 아날로그적 기초(사유체계와 체화)가 디지털의 기술을 우선한다는 점을 재차 인식하고 싶은 바람 이며 동양정신의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는 서구의 과학적 이론과 기술을 이용하여 그림이(수묵화가)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의 문제를 생각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전통과 동양정신 자체만을 의식하는 것보다 잠재되어진 그것들이 현대의 삶을 사는 개인의 사유 안에서 자연스럽게 유추되어지는 것이 보다 발전된 형태의 작업을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는 과정이다. 이러한 작업은 결국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의 폭을 늘리고 확장된 매체의 활용으로 실험적인 동양화 쟝르를 모색하려는 개인적인 시도이다.

6회 개인전 (홍지윤의 思惟 _ 水墨그림과 詩 2003 맥도날드 맥 갤러리)
이러한 토대 위에서 전통적인 동양화의 개념인 “書畵同源 / 書畵一體”의 개념을 의식, 그림과 시를 동일화하여 삶을 살면서 느끼는 일상의 정감과 사물의 이면, 그리고 감정의 흐름을 진솔하고 내밀하게 수묵 그림과 日記 혹은 수묵그림과 詩의 형태로 표현하였다. 화면의 텍스트들은 물, 새, 나무, 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주변의 사물, 시간의 흐름속에서 느끼는 정경이다. 이들을 때로는 구상으로 때로는 추상으로 표현하였다. 물의 이미지들은 전통적인 수묵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자유로운 사유속에서 새롭게 재해석하여 형상화한 것이며 새의 이미지들은 나 자신의 자화상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현대의 삶을 사는 그리고 동양화를 하는 나 개인이 살아왔던 삶과 앞으로의 삶 그리고 삶 자체를 아우르는 총체성을 상정하고자 하였다. 전시된 내용 (수묵그림과 시)은 책(화선지 위의 시간 _ 홍지윤의 思惟 _ 水墨그림과詩:(주)북스앤피를/정글 프레스)으로 출간하여 그림과 텍스트가 하나의 시각 이미지로 가시화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또한 대중적이고 동서의 문화가 공존하는 햄버거가게라는 장소에서의 전시를 통하여 새롭게 해석한 전통적인 수묵화가 현대의 삶과 맞닿을 수 있는 부분을 찾고자 하였다.


■ 작품진행방향

나는 앞서 제시한 개인전의 내용 전개(3회_사유의 문 / 4회_사유의 풍경 / 5회_ 움직이는 思惟, 큰새“붕(鵬)” / 6회 _ 홍지윤의 思惟 _ 水墨그림과 詩)와 맥락을 같이하여
향후, 동양화가 전통의 확고한 이해 위에서 폭 넓은 미술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추구해야 함은 물론 개인적 삶의 단초를 해석 함으로서 시대상황의 논리에 부합하는 열려있는 것으로서의 방법론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앞으로의 작업은 “홍지윤의 사유_ 움직이는 水墨그림과 詩”로 정하고 5회 개인전에서의 움직이는 水墨그림의 표현방법(Animation)과 6회 개인전의 그림과 텍스트(詩)의 혼용작업을 변용 하여 자연과 삶을 모티브로 한 수묵영상과 텍스트를 하나의 공간에 제시 함으로서 수묵동양화의 새로운 형태를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앞서 제시한 자연의 변화에 기저를 두는 자유로운 사유로부터의 영상과 삶의 경험으로부터의 텍스트가 전통적 개념(詩/書/畵)의 동양화에 근거한다는 점을 감안하고 진행될 것이다. 재차 언급한 바와 같이 전통으로서의 동양화의 개념과 표현 형태가 현대를 사는 지금에 있어서 어떠한 방법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제시가 될 것이며 대중들로 하여금 새로운 형태의 현대적 고전을 읽히게 하는 데에 전시의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나의 작업은 전통을 다양하고 폭 넓은 현대적 관점으로 변용하기위한 과정이라고 여기며 또 하나의 새로운 것으로서의 동양화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나아가 전통이 전통으로만 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문제에 손을 내미는 현재진행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전통성(뿌리)과 현대성(잔가지)의 적절한 변용은 본인의 앞으로의 작업에 있어서 내재된 전통이 현대의 새로운 전통으로 아우르는 완성 태를 이루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