熱情水墨 _ Bach와 水墨畵
작성자
hongjiyoon
작성일
2015-02-25 04:49
조회
464
Bach를 듣는다.
무엇이라고 단정하여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잡힐것도 같은 가느다란 영감의 줄기가 동시에 잦아든다.
인간의 심장소리를 닮아 無言의 화려함을 만들어내는 악기인 Cello로 연주되는 바흐는
저 마음 깊숙히 그 아래에 앉아있는 근원적 울렁임의 모습으로 천천히 감겨오는데
그것은 혼미한 그 무엇인가가 아니라 켜켜히 정돈된 부드러운 지층의 형태이다.
그 위에서라면 그 어떤 행위를 한들 원래 그대로이고
그 어떤 들썩임도 없을것만같은 든든함 ....
Bach,cello, Bach,cello,Bach,cello,Bach,cello...............
듣고,감겨들고,나직이 가라앉고 듣고,감겨들고,나직이 가라앉고........,
그리고 생각한다.
熱情水墨 _ Bach와 水墨畵
나는 수묵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글씨도 쓰고
그것을 컴퓨터에 옮겨서 영상으로 작업을 하기도 한다.
가벼이 넘겨버리기에는 무거운 힘을 가진것이 수묵그림이다.
왜냐하면 수묵은 물(水)과 먹(墨)으로된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질료이면서
자연과 가까운 그것은 화선지와 만나 상상할 수 없는 수 많은 다양한 형태를 만들기 때문이다.
수묵화를 그리고 공부하다보면 인간도 그렇고
또한 인간으로부터 연유하여 행해지는 모든것들이 자연 그 자체임을 언제나 깨닫게 된다.
이런 마음은 최근 수묵화적 그래픽 - animation영상을 하면서 더욱 분명 해 졌다.
자기울타리 안에서는 자기를 볼 수 없지만
그 너머에서는 울타리 안의 나를 확인할 수 있는것처럼
컴퓨터를 사용한 영상작업은 나에게 수묵화가로서의 정체성과
수묵화를 그리는 행위의 근간을 찾아 정리하고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래픽Graphic이라는 거울을 앞에 놓고 수묵화를 보았을때
이는 단지 자연 자체나 재료가 가진 특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광범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픽化된 수묵그림을 통하여 나는 또다른 수묵이미지를 차용할 수있게 되었고
또한 그것은 나에게 평면너머의 또 다른 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보여지고 파악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고 나 자체가 그것을 말하고 있을때 가능한 것이었다.
동양화를 공부할때 배웠던 것들 _ 먹의 성향이 단지 검은색으로만 되어있지 않았다든가
모든 형태를 표현할때에는 정확한 선을 골라야 한다든가
또한 어떤 형상에는 그것에 합당한 색채가 있다든가 하는 등의
논리들은 단지 그 모든것의 일부였을 뿐 그 자체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이렇게 내가 말하고자하는 수묵화는 내가 할 수 있는것의 최선이자 하고있는
변용가능한 모든것의 기본적 개념으로서의 수묵화이다.
그래서 그것은 그 표현자체로 하나의 수묵그림이 되기도 하고
때로 글씨가 되기도 하고 영상작업이 되기도 하고
그것에 사용된 stilll image가 또 하나의 그림이 되기도 한다.
나는 나의 변형된 그 어떤 형태의 수묵화나 그것을 사용한 다른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내가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재료로서 그것을 사용하여 늘 변화를 꿈꾼다.
결국 나에게 수묵화는 질료 자체가 갖는 특성을 지칭하는 그림이 아니라
나의 신념과 극명한 이미지의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수묵이며
다른 여러가지 도구를 사용하여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치 수많은 음악가와 연주자들이 바흐를 그렇게 수 많은 시간동안
여러번 여러가지 방법으로 변형하고 차용하여 연주하되 그것은 늘
바흐고유의 음색으로 인간의 가장 밑바닥의 감성줄기 하나를 튕기듯이 말이다.
나는 수묵의 표현을 통하여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심연의 열정을
단지 뜨거운 표피의 감각적언어가 아닌 저 아래에 응집되어있는 힘의 변주로
건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내가 가진 정신을 이루고 있는 작은 실오라기 하나 하나들이
천천히 하나하나 그들 나름의 생명력을 발휘하여 자연스레 밖으로 흐르게하는
연주자이고 싶다.
무엇이라고 단정하여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잡힐것도 같은 가느다란 영감의 줄기가 동시에 잦아든다.
인간의 심장소리를 닮아 無言의 화려함을 만들어내는 악기인 Cello로 연주되는 바흐는
저 마음 깊숙히 그 아래에 앉아있는 근원적 울렁임의 모습으로 천천히 감겨오는데
그것은 혼미한 그 무엇인가가 아니라 켜켜히 정돈된 부드러운 지층의 형태이다.
그 위에서라면 그 어떤 행위를 한들 원래 그대로이고
그 어떤 들썩임도 없을것만같은 든든함 ....
Bach,cello, Bach,cello,Bach,cello,Bach,cello...............
듣고,감겨들고,나직이 가라앉고 듣고,감겨들고,나직이 가라앉고........,
그리고 생각한다.
熱情水墨 _ Bach와 水墨畵
나는 수묵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글씨도 쓰고
그것을 컴퓨터에 옮겨서 영상으로 작업을 하기도 한다.
가벼이 넘겨버리기에는 무거운 힘을 가진것이 수묵그림이다.
왜냐하면 수묵은 물(水)과 먹(墨)으로된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질료이면서
자연과 가까운 그것은 화선지와 만나 상상할 수 없는 수 많은 다양한 형태를 만들기 때문이다.
수묵화를 그리고 공부하다보면 인간도 그렇고
또한 인간으로부터 연유하여 행해지는 모든것들이 자연 그 자체임을 언제나 깨닫게 된다.
이런 마음은 최근 수묵화적 그래픽 - animation영상을 하면서 더욱 분명 해 졌다.
자기울타리 안에서는 자기를 볼 수 없지만
그 너머에서는 울타리 안의 나를 확인할 수 있는것처럼
컴퓨터를 사용한 영상작업은 나에게 수묵화가로서의 정체성과
수묵화를 그리는 행위의 근간을 찾아 정리하고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래픽Graphic이라는 거울을 앞에 놓고 수묵화를 보았을때
이는 단지 자연 자체나 재료가 가진 특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광범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픽化된 수묵그림을 통하여 나는 또다른 수묵이미지를 차용할 수있게 되었고
또한 그것은 나에게 평면너머의 또 다른 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보여지고 파악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고 나 자체가 그것을 말하고 있을때 가능한 것이었다.
동양화를 공부할때 배웠던 것들 _ 먹의 성향이 단지 검은색으로만 되어있지 않았다든가
모든 형태를 표현할때에는 정확한 선을 골라야 한다든가
또한 어떤 형상에는 그것에 합당한 색채가 있다든가 하는 등의
논리들은 단지 그 모든것의 일부였을 뿐 그 자체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이렇게 내가 말하고자하는 수묵화는 내가 할 수 있는것의 최선이자 하고있는
변용가능한 모든것의 기본적 개념으로서의 수묵화이다.
그래서 그것은 그 표현자체로 하나의 수묵그림이 되기도 하고
때로 글씨가 되기도 하고 영상작업이 되기도 하고
그것에 사용된 stilll image가 또 하나의 그림이 되기도 한다.
나는 나의 변형된 그 어떤 형태의 수묵화나 그것을 사용한 다른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내가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재료로서 그것을 사용하여 늘 변화를 꿈꾼다.
결국 나에게 수묵화는 질료 자체가 갖는 특성을 지칭하는 그림이 아니라
나의 신념과 극명한 이미지의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수묵이며
다른 여러가지 도구를 사용하여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치 수많은 음악가와 연주자들이 바흐를 그렇게 수 많은 시간동안
여러번 여러가지 방법으로 변형하고 차용하여 연주하되 그것은 늘
바흐고유의 음색으로 인간의 가장 밑바닥의 감성줄기 하나를 튕기듯이 말이다.
나는 수묵의 표현을 통하여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심연의 열정을
단지 뜨거운 표피의 감각적언어가 아닌 저 아래에 응집되어있는 힘의 변주로
건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내가 가진 정신을 이루고 있는 작은 실오라기 하나 하나들이
천천히 하나하나 그들 나름의 생명력을 발휘하여 자연스레 밖으로 흐르게하는
연주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