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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코리아테틀러 1월호 - 피렌체 비엔날레 참가기

작성자
hongjiyoon
작성일
2015-02-25 04:49
조회
708
피렌체 비엔날레 Firenze Biennale
[기간]2003.12.6 ~ 2003.12.14
[장소]포르떼짜 다 바쏘
Fortezza da Basso (http://www.mega.it/eng/egui/monu/fortbas.htm)


르네상스 미술의 본고장 그리고 꽃의 도시,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지인 두오모성당,노을이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아르노강과 베키오다리 그리고 커다란 조개위에서 탄생하는 비너스가 그려진 보티첼리의 그림이 있는 우피치미술관 ......이 모든 형용사는 보두 피렌체에대한 찬사이다. 피렌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시에 나는 두번째오게 되었다.

피렌체의 밤하늘은 참 아름답다.
눈이 시린 별과 달이 언제나 밤이면 검푸른 하늘 사이 사이에서 하얗고 해맑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전시를 끝내고 돌아오는 매일 저녁, 숙소를 향하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커다란 달과 작고 빛나는 별들은 하룻동안 만난 수 많은 화가들릐 얼굴이 되어 내 가슴에 박혔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내 작품이 놓인 전시장을 지키고 있으려니 아침은 늘 잠이 모자라서 허둥지둥 정신없이
전시장으로 달려간다. 시내중심부에 있는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santa maria novella]으로 들어오는 레일의 굴다리를 지나 공사중인 횡단보도가 끝나는 곳에 전시가 열리는 포르떼짜 다 바쏘가 있다.경복궁의 돌담과 같은 길게두른 성벽 사이의 작은 문 입구로 들어서면 밖과는 전혀 다른 현대식 전물이 드러난다. 이곳에서 건물의 스테인드 글라스를그리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주로 각종 큰 규모의 전시가 열리는 포르떼짜 다 바쏘는 여름이 되면 벼룩시장이 서기도 하고 놀이 마당도 열려서 흥겨운 공간이 된다고 한다. 2년전 이곳을 찾았던 때보다 어쩐지 나무들이 조금 더 커져있는것 같고 그렇게 넓고 낯설어 보이던 이곳이 꼭 어려서 놀던 학교 운동장을 본것처럼 작아만 보인다.

1997년부터 2년에 한번 열리는 피렌체비엔날레는 이번이 4회째가 된다.
피렌체 비엔날레는 피렌체 시와 철도청 그리고 바스꾸알레 세로나 pasquala celona와 삐에로 세로나piero celona 형제교수님들의 아르떼 스튜디오 [www.artestudio.net] 가 주관한다.전 세계 여타의 비엔날레에 비해 주최측의 참여도보다는 작가들 스스로의 참여도와 조직력을 우선하며. 하나의 공간안에서 이탈리아는 물론 전세계의 작가들이 모여 회화,조각. 설치. 비디오. 사진 .등 Painting, sculpture, GRAFIC(Drawing and Mixed Media),PHOTO AND DIGITAL ART, installation 이념과 학연,표현매체를 의식하지 않은 자유로움안에서 각자의 작품을 소개하고 서로의 교류를 통하여 직접적인 교류가 이루어 진다. 또한 올해 피렌체비엔날레는 바티칸박물관 복원연구소와 페라리자동차에서 후원하였고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세미나를 열기를 더했다.올해는 재작년에 참가했을 때보다 참여 작가수도 많아지고 규모가 커진탓에 전시공간도 한군데 더 늘어서 수 믾은 작가들의 작품을 하루에 모두 둘러 보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어떠한 행사이든 상업적인 요인이 고개를 드는것 같다.세계각지의 500명이상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규모가 커진대신 질적 측면에서 작품의 수준이 균등하지 않은 맹점이 그러한 측면을 증명하는것 같다. 그러나 회가 거듭되면서 조직위원들의 열의로 대회의 조직면에서는 점차 자리를잡아가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작가카드를 보이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제 사흘박엔 남지않은 전시장은 수 많은 작가들의 담소와 그들을 찾은 관람객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각지에서온 작품의 온기로 달아올라있다.
전시를 시작한지 오늘이 7일째,12월에 서울에서 있을 3개의 전시를 준비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탓에 이국의 정취와 여행지의 즐거움이 이제나 겨우 되살아나 는가 싶더니 .......... 지내온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내일이면 시상식이 있고 저녁에는 작가들과 함께하는 디더파티가 있다.
그리고 일요일 하루가 지나면 전시는 막을 내린다.

전시를 할 때면 언제나 하는 생각들......
1년을 기다려 나는 왜 이 먼곳에 나의 분신들을 챙겨와 풀어놓으려고 하는 것일까.
아마 화가에게 이러한 질문은 사람들의 근원적인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 ...
내가 무엇을 하려 이세상에 태어났을까와도 같은 것일 것이다.
시간이 헛되지 않고 들인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참으로 신비롭다.
세계각지에서 온 작가들은 말과 생김새가 다를 뿐 말이 통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 마음을 앍을 수 있었다.
내 마음을 그들의 마음에 귀기울이면 말이다.
나를 조금씩 성숙하게 해준 이제 친구가 된 몇명의 작가들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먼저[1]
오스트리아의작가 제로 뮬러Jero muller
190cm는 될법한 말레이시안계의 혼혈인이다.
그는 더블베이스 연주로 생계를 꾸린다고 했다.
사랑하는부인의 누드를 나무판넬위에 그려서 양쪽에 문을 달아 입체적이고 따뜻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건드리면 좌우 앞뒤로 흔들려서 내가 [yes or no]라고 이름 붙여준 손바닥에 들어갈 크기의 자그마한
스프링위의 여인두상,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나이테를 살린 아름다운 토르소가 그의 작품이다.
벽끝까지 설치한 종이를 붙인 내 작품이 건조한 실내공기로 떨어질때마다 그의 큰 키가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착하고 고마운 친구.....

그 다음[2]은
예쁜 미소를 가진 모니끄 듀퐁Monique Dupong
그녀는 정식미술교육을 받지않은 그야말로 천성이 화가인 이탈리아여인이다.
시실리의 바닷가에서 주워온 나무토막과 나무가지 그리고 돌맹이등의 오브제로 부엌과 같은 생활속의 풍경과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동물들을 만들고 그렸다.
언젠가 막연히 그리던 나만의 부엌이 그녀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공하지 않은 천연의 재료를 사용하는 그녀는
동양의 정신과 자연을 주제로 작업하는 나와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제작년에 전시장에서 내가 그려준 수묵화로된 자신의 초상화가 자신의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고 하던
늘 에스파뇰만 사용하는 안젤로 오렌잔스Angel Orensanz[3]
그는 뉴욕에 거대한 성당이 스튜디오이며 작업실이라고 한다.
언제나 전시장안에 있는 매점에서 와인을 마시다가 커다란 소리로 인사를 건네왔다.
그는 주로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세계적인 작가이지만 어느 한 구석에도 오만함은 찾아볼 수 없는 유머와 광기가 공존하는 사람이다.그는 자신의 작업실인 성당안에 와이어에 인물상을 달아매어 자신의 이름을 따서 그야말로 천사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
지난번 만났을때와 마찬가지로 늘 기괴한 퍼포먼스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줬다.
가끔 내볼에 얼굴을 갖다대고 따뜻하고 부드럽다고 했다.

또 한사람 장 쏘까[4]Jan sawka
내가 일본이름이냐고 물었더니 폴란드계라고 했다.
그는 하얀수염과 큰 안경때문에 마치 산타클로스같이 보인다.
귀여운 할아버지......그는너무나 동양에 특히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화선지에 수묵화로 된 내 그림을 보고는 거의 감격에 가까워했다.그리고 또 나와같이 회화작품으로 애니매이션 작업을 해서 말 그대로 나이와 국적을 뛰어넘어 영감이 통하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은 16 분정도 되는 애니매이션스틸을 큰 벽면에 연결하여 커다란 하나의 그림을 만든것이다. 그리고
아침10시 부터 상영되는 비디오 프로젝트 룸에서는 애니매이션 작품도 함께 전시했다.
그와는 다음에 있을 뉴욕과 타이완 그리고 일본 전시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정말 깨끗하게 생긴 전형적인 북구의 게르만 미인인 독일 아줌마 베아뜨[5]Beate Schroedl
처음 전시장에 도착했을때 내 눈을 사로잡았던 스마트한 스틸작품의 주인...
높이가 5m는 족히 될법한 알미늄계열의 재료를 사용한 조각작품이 그녀의 작품이다.
함꼐 공부했다는 셰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작가보다 내 작품이 더 훌륭하다고 추켜올려서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내 작품의 재료를 궁금 해 하는 그녀에게 한국의 화선지와 동양화 재료들을 파는 인사동을 소개 해 주었다.

또 한 사람 내 옆자리 아줌마 페이우드 할머니[6]Fay wood
그녀는 뉴욕북쪽 우드스탁근처의 한적한 마을의 교회하나를 스튜디오로 샤용하는 화가이다.
너무나 인정이 많아서 매일아침 나의 안부를 물어오고 친절한 메세지를 노트에 적어주고는 했다.
그녀의 작품은 모두 철사와 나무들로 되어있는 전원의 냄새가 물씬풍기는 조각작품이다.
주로 오브제를 사용하여 작은 동물과 인물을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전시장에서도 언제나 그녀의 곁을 지켜주던 정말 착한 인상의 남편이 자신의 후원자라고
그리고 매니저라고 너무나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우드스탁을 가보고싶다고 했더니 오면 꼭 오라고 몇번이나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사랑스런 내 동생 이 된 루치아[7]Lucia
그녀는 유일한 20대의 젊은 아가씨로 프라다의 컬러리스트라고 했다.
웃는 얼굴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누구도 사랑에 빠질것 같은 발랄하고 겸손한 이탈리아 아가씨이다.
루치아는 영어를 전혀 못했지만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저께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오셔서 인사를 나누고 양볼에 번갈아 세번 키스하는 인사를 할 만큼 친힌 사이가 되었다.
루치아는 어려서 친구인 말을 잘 못하는 안젤리카와 늘 함께 있었다.
안젤리카는 나의 이상형인 헤어스타일인 뽀글이 인형 머리를 하고 있는 언어장애를 가진 아가씨이다.
미술복원연구소에서 일을 하는데 말할 때마다 내가 예쁘다고 볼을 잡아당기고는 했다.
루치아는 일하는 틈틈히 작업을 하는데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물위에 반영되는 모습을 오일페인팅으로 그리는 작업을 한다.
솔직히 그녀의 작품은 작품성은 없었지만 그녀의 착한 마음은 오래 잊혀지지 않을것 같다.

이들외에도 터키의 사파 그리고 언제나 와인에 취해서 말을 걸어오던 브라질의 페르난도 그리고 아리조나에서 온 빨간옷의 이쁜이 사라,너무나 잘생긴 남편을 둬서 질투에 사로잡히게 한 미국의 코니노이스,또....세살때부터 그림을 그리셨다는 샌프란시스코의 평화주의자할머니 클라우디아 채플린 .....
모두 다 마음을 나눈사람들이다.

이들과 하루 이틀을 보내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 그리고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가끔 존재의 가치를 되새겨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 밤
이들을 떠올리면 어떨까한다.
모두다 미술이라는 것을 숙명으로알고 즐겁고 진실되게 삶을 사는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었다.
그저 그림을 그리는 일이 의무로 그리고 즐거움으로 정해져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의 소울매이트 [soul mate]가 된 장 쏘까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그림과 그림을 그리는 우리는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죽은 화가의 도시에 와서 살아있는 그들의 그림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을 이야기 하려는게 아니라 역사와 문화와 종교와 인종을 감싸안는 힘과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림이라는 [미술을 통칭한]것을 말 하고 싶은 것이다.왜냐하면 그림은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 그리고 철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일 모레면 전시가 끝날것이고 남은 일정동안 간단한 여행을 마친 후 서울에 돌아가면 지금의 이 순간을 그리워 하게 될것이다.지난 시간은 늘 그리울터 이지만 그래도 이번 전시여행은 그동안 지쳐있던 나의 가슴이 온기를 얻어가는것 같아서
그리울 예감이 허전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작가들도 작가의 본분인 인간 근원의 따뜻함 아름다움을 좀 더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생각을 했다.
단지 경제적인 이유때문만은 아닌것 같은데 왜 우리는 이토록 망망하게 살아가하는 것인지....
너무나 빨리 너무나 남보다 낫게를 외치는 건 아닌지....
함께누리는 아름다움 함께 누리는 진정한 의미의 그림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 보고싶어진다.

세월이란게 헛되지 않은 것이 지난번에는 상을 받았다고 자랑할 마음만 가져가는 The "Lorenzo il Magnifico"award Grapic (Drawing and Mixed media) 4"Prize 어린아이 였다가 이번엔 조금 자라서 그동안 보지못하고 느낄겨를 없던 사람들의 마음을 가져가는 숙녀가 된것같다.이제 무언가 막연히 다시 시작이라는 느낌이든다.
부디 나의 그림이 따뜻함과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나 스스로에게 기도 해 본다.
그것이 내가 이 세계적인 작가들이 모이는 비엔날레에와서 가져가는 그 어떤 성과보다 가치있는 일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빨라조 삐띠Palazzo Pitti~삐띠궁 앞 오랜 역사가 존재하는 피렌체의 인터넷 가게에서 나는 이글을 쓰고 있다.
사람들이 지나는 창밖에는 또다시 아름다운 피렌체의 밤하늘이 펼쳐지고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도시 한복판을 가르는 아르노강을 건너야하는 길이다.
오늘밤은 그동안 전시장에 박혀있느라 걷지못한 오렌지색 불빛이 아름다운 베키오 다리를 건너봐야겠다.
나에게 아름다운 인생을 허럭하신 신과 그리고 서울에 두고온 가족과 사랑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또 아쉬운 하루가 가고있다.
이 글을 쓰겠다고 한것이 잘 한것 같다.
이곳에 오기까지 마음 밑바닥에 차곡히 쌓여 있었던 수 많은 고생스러움과 피곤함이 이제는 모두 연소되어 향기만이 남아 나를 행복하게 하니 말이다.

2003.12.13 피렌체 홍지윤
2004 코리아테틀러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