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22-7.22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기획전시 [명랑미술관]
분홍인생 粉紅人生, Life was Pink : what I knew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Como agua para chocolate + 스왕크 Swank
‘ …어느 날 티타는 사랑하는 페드로로부터 분홍색 장미 꽃다발을 받는다. 가슴에 꼭 끌어 안았던 분홍 장미꽃은 가시에 찔린 그녀의 손과 가슴에서 흐른 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 빨간 장미꽃이 되었다….’타티가 만든‘빨간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먹은 큰언니 헤르루디스는 온몸에 사랑이 퍼져 억압의 어머니를 떠나 사랑을 찾아 나선다.’
[분홍인생 粉紅人生, Life was Pink : what I knew 내가 알고 있는 인생은 분홍이었다]은
라우라 에스키벨Laura Esquivel의 여성주의, 마술적 사실주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1989년작, 원제 Como agua para chocolate, 1992년 개봉, 영화 Like Water for Chocolate)이 맥락이다.
1895년 멕시코의 리우그란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품 속 어머니와 언니 헤르루디스,와 로사우라,
그리고 부엌에서 자라난 주인공 막내딸 티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상실 [스왕크 Swank]
에서 젊은 날을 살았던 내 엄마와 그곳에서 자라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품은 영화의 장면들과 2019년 개인전 작품 [스왕크]을 교차 구성하여
지필묵 드로잉, 회화, 그래픽, 비디오, 엔틱, 빈티지 오브제등으로 구현된 설치미술로
약간 슬프고 대체로 명랑하고 마술적이다. 소녀같고, 할머니같다. ‘분홍’이란게 원래 그렇다.
내가 알고있던 분홍의 삶은 어떻게 빨강이 되었고
어떻게 명랑하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초콜릿 (Como agua para chocolate)’이 되었나.
달콤함과 쌉쌀함,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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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엄마는 하얗고 큰 2층집을 사서 1층에 ‘스왕크’라는 이름의 새 의상실을 차렸다.
여섯 살의 나는 화려한 자궁속과 같았던 그곳에서 자라났다.
‘스왕크’… Swank, S-wingk, Supungk of Pippi Longstocking?… or … Swany, Swan?!…
아침 화장을 하는 우아한 엄마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중얼거리며 엄마를 올려다본다.
그녀는 마스카라로 곤충의 다리 또는 식물의 촉수를 닮은 긴 속눈썹을 기술적으로 말아 올린다.
바로 그때 나는 수 많은 나비들의 춤과 백조의 고요한 날갯짓과 쉼 없는 물속의 자맥질을 보았고
도도하고 고요한 물길을 가르며 가볍고 가볍게 튀어 오르는 물방울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아침 공기에 섞인 하얗고 낯설고 햇빛처럼 눈부신 화려함을 마셨다.
패턴과 천, 가위, 초크가 놓인 하얗고 넓은 작업대.
고전주의 서양미술 화집과 장대천의 산수화 화집.
이오니아식의 석고장식과 흰 페인트를 칠한 기둥.
보그와 논노와 마분지로 만든 두꺼운 원단 샘플책.
영국제 체크무늬 모직, 일본제 린넨, 물결모양의 실크.
마호가니 색 코린트식 부조로 장식한 목재 장식장.
쇼윈도우의 유화그림과 이젤과 희고 긴 마네킹들.
유리창에 번지는 한낮의 풍경과 엄마의 목소리.
‘스왕크’. 그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엄마에게 물은 적이 없다. 엄마가 없는 지금, 거울에서 엄마를 본다. 그러고 보니, 그 이름이 나인 것도 같다. 엄마와 그녀의 미술이 담겨있던 의상실에 대한 기억은 여섯 살의 소녀와 중년의 나 사이에 존재해 온 잠재된 ‘독창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전시에서 나는 ‘엄마’와 ‘스왕크’와 ‘나’와 작업의 아이콘인‘색동꽃’을 하나로 보고 서로를 잇는 서정을 찾아 나의 미술에 새겨보려고 한다.
2020 홍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