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Being & Dead, Meet and Separate 봉별 逢別 : ‘한국화의 재발견’ ,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활보 闊步 Striding around (each 210×150cm)×3 _ acrylic & ink on rice paper _ 2009
http://www.youtube.com/watch?v=vVBqJyWrQpY
http://www.youtube.com/watch?v=_EXQDf2jA8M
봉별(逢別) – 만남과 혜어짐
나약한 지식인으로 하얀 날개를 접고 고전과 모던의 틈을 살아간 사람 이상(李箱).
그의 이상이자 자화상인 금홍(錦紅)과의 만남과 이별은
불협의 극한에 이른 장소인‘금홍의 방’에서 여러 번의 봉별을 치루고 끝내 파한다.
그에게서 포스트 모던과 가치혼돈의 틈을 살아가는 지금을 본다.
이번 전시 작품 ‘봉별(逢別)’은 그러한 내 주변 세상과의 접점과 불화(不和)를 환유한다.
나는 이상의 에피소드 – 시 : 꽃나무 / 소설: 봉별기((逢別記)를 모티브로
1930년대 기생 금홍의 방을 나의 공감각적 작업스타일을 통해 시각화하여
이 혼돈의 시대에 단 한 그루의 꽃나무에서 피어날 유일한 꽃을 피워내고자
봉별(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는 삶의 가치와 현실을 말하려고 한다.
꽃나무
이상李箱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 하나가 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히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히 꽃을 피워 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
게 갈 수 없소. 나는 막 달아났소. 한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
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러운 흉내를 내었소.
봉별기(逢別記)
이상李箱
1936년 12월호 《여성》지에 발표 / 이상, 그의 첫 아내 금홍과의 생활경로
폐병을 앓는 ‘나’ 이상, 23세 3개월
요양차 B온천장, 작부 금홍(錦紅)을 만나 동거
이별, 동거, 이별, 동거 …
끝, 금홍은 다시 작부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놀다가 영원히 헤어지기로 서로 합의
끝
생멸(生滅)
홍지윤 洪志侖
꽃 그림자 하나
꽃 한 송이
꽃 그림자 둘
꽃 두 송이
꽃 그림자 셋
꽃 세 송이
그 많던 그림자들
그 많던 꽃들
피어났다가 시들어지다.
Being and dead _ Meet and separate
One of flower shadow
One of flower
Two of flower shadow
Two of flowers
Three of flower shadow
Three of flowers
Those of so many shadows
Those of so many flowers
Blossomed and then withered
生死
一朵花的影子
一朵花
两朵花的影子
两朵花
三朵花的影子
三朵花
那么多话的影子
那么多的花
盛开过,然后凋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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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별(逢別)-만남과 헤어짐
글로벌 시대의 아시아 여성과 문화_인천여성비엔날레
Episode 1. 분홍 꽃잎
가을을 맞아 오랜만에 매니큐어를 한 빨간색 손톱 위에 진분홍 아크릴이 묻는다.
몇 번에 걸쳐 헝겊에 닦아낸 흔적이 흡사 다 지고 난 꽃잎들 같다.
오전부터 틀어놓은 낮게 울리는 오래된 네 박자의 가요가 오후의 강 물결 같다.
그 위로 분홍, 분홍, 분홍의 꽃잎이 안개처럼 피어 오르더니 천천히 춤을 춘다.
2년 전 중국 베이징 따산즈 개인전에 내놓았던 세 폭으로 된 분홍 꽃나무 그림을 떠올린다.
꽃나무에 앉아있던 색동 새들과 분홍 꽃들이 그림에서 빠져 나와 춤추던 꽃잎들과 어우러진다.
가끔 지난 날 그려놓은 그림이 타인의 과거처럼 다가 올 때가 있다.
Episode 2. 꽃나무
인터넷으로 구입한 이상(李箱)전집이 배달되어 왔다.
늘 하던 대로 책갈피모두를 엄지에 지탱시키고 휘리릭 그리고 천천히 한 번에 넘겨본다.
1930년대 낭만을 두른 회색 빛 사진을 서두로 한 염세적 문장들이 순식간에 눈에 들어온다.
그 중 가슴에 와 박힌 소설, ‘봉별기(逢別記)’. 그의 이상이자 자화상인 금홍(錦紅)과의
만남과 이별은 불협의 극한에 이른 장소인 ‘금홍의 방’에서 여러 번의 봉별을 치루고 끝내 파한다.
나약한 지식인으로 하얀 날개를 접고 고전과 모던의 틈을 살아간 사람 이상.
그에게서 포스트 모던과 가치혼돈의 틈을 살아가는 지금을 본다.
그리고 처음으로 마주한 이상의 시, ‘꽃! 나! 무!’.
꽃나무
이상(李箱)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 하나가 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히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히 꽃을 피워 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
게 갈 수 없소. 나는 막 달아났소. 한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
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러운 흉내를 내었소.
단어 하나 하나를 지나칠 때 마다 멋진 가수의 노래에 머리카락이 설 때와 같은 감정이
가슴과 머리를 관통한다.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Episode 3. 금홍(錦紅)의 방
나는 자작시를 주제로 회화작업을 한다. 그리고 여기에 사진과 영상 그리고 때때로 설치, 퍼포먼스, 공공미술과 같은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융합한다. 최근에는 입체조형작업을 해 보겠다고 전전긍긍하던 터였다. 무슨 대단한 것이 아니라 방에 놓여있는 가구, 또는 오브제에 채색을 해서 방을 꾸며보고 싶었다. 그런 상상이 ‘꽃나무’,‘ 봉별기’, ‘이상’, ‘금홍’과 함께 머릿속을 맴돌더니 순식간에 하나의 방이 완성되었다. 내가 개입된 세상과의 접점과 불화(不和)를 환유하는 “금홍의 방”이다.
이상의 에피소드를 공감각적인 나만의 작업스타일로 시각화하여 이 혼돈의 시대에 단 한 그루의 꽃나무에서 피어날 유일한 꽃을 피우고자 봉별(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는 삶의 가치와 현실을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pisode 4. 몇몇의 금홍(錦紅)
: 오뚜기주단언니 / 초원자수아줌마 / 상보당아줌마 그리고 내 엄마와 나
덕분에 동대문종합시장주변, 새로 단장된 청계천변을 마음껏 걸었다. 사실은 뛰었다.
지금의 나보다도 한참 젊었을 그때, 기세 등등 잘나가는 의상디자이너였던 엄마는
오후에 들이닥칠 손님이 뜸한 오전 시간이나 오후의 한가한 잠깐의 시간에 장을 보았다.
엄마를 따라 나온 내 눈높이 매대 위 세상은 색색의 각종 단추며 레이스 등 반짝이는 소품들로
가득 찬 별천지였다. 엄마는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정신 없는 호기심 많은 나를 데리고 바쁜 시간을 쪼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것이다. 돌아가신 엄마처럼 이번에는 나 혼자서, 금홍의 방에 놓일 이불과 가구와 소품 등을 위해 몇 십 년 만에 다시 동대문시장을 뛰어 다니게 된 것이다.
오뚜기주단 언니 / 종합상가 2층은 한복옷감을 파는 곳이다. 오뚜기 주단은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옷감만을 판다. 그곳의 안주인인 오뚜기 언니는 한 눈에도 그녀보다 쳐져 보이는 말 수가 없는 속 모를 충청도 출신 남편과 함께 장사를 한다.
가끔 이곳에서 썩기엔 아깝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곧은 허리에 제법 미모가 있다. 툴툴거리며 말하는 고지식한 남편의 눈을 피해가며 가격흥정을 하는 그녀는 너무나 착하고 상냥하다.
오뚜기처럼 씩씩하고. 그러나 어여쁜 그녀의 입가에 선명한 상처가 그녀만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
초원자수 아줌마 / 종합상가 건너, 동화상가3층은 자수상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얼마 못 가면 50대 후반가량 되어 보이는 작고 초라한 몸집을 한 그녀의 가게, ‘초원자수’가 있다.
사이 좋은 늙은 시 엄마는 그녀와 함께 실밥을 정리하고 꽃을 오린다. 자긍심에 가득 찬 기막힌 손놀림으로 눈 깜짝 할 사이에 하나하나 꽃을 완성한다. 한 자리에서 35년간 미싱자수로 꽃 수만을 놓았다고 한다. 복사 해 간 그림원본을 보고 아무런 밑그림 없이 단 이틀 동안에 오직 눈짐작으로 이불과 방석 그리고 베개를 완성했다. 그녀가 일을 하는 미싱 바로 앞, 가장 잘 보이는 곳에 20대 시절, 미니스커트 차림의 아름다운 그녀 사진이 있고 바로 옆에는 다음 번 국회의원에 출마할거라는, 요즘도 가끔 만난다는, 초등학교 동창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이 나란히 붙어있다. .
상보당 아줌마 / 동대문을 지나 청계천 8가, 황학동. 곱창골목 깊숙이 골동품가게 ‘상보당’이 있다.
60대의 주인아줌마는 언제나 빨간 바지를 입고 빨간 립스틱을 하고 있다.
한 번에 구매결정을 잘 못하는 내가 찾아가는 매번, 1930년대 일본 강점기시대 물건을 척척 내어주었고 40년간 계산기로 계산을 해 본적이 없다는 그녀는 낡은 장부에 그날그날 내가 산 물품의 가격을 틀리는 법 없이 암산한 뒤,수기로 적어 넣었다. 약간 다리를 저는 그녀의 아들에게 ‘답답이, 답답이’ 하며 가끔 핀잔을 주는 늙은 얼굴이면에 화려했던 예전의 총기와 애교가 남아있다.
그녀는 헉헉거리며 찾아간 내게 인사를 대신해 어두운 저쪽에서 꺼내온 차가운 홍삼음료를 언제나 내어주었다. 퇴근길에 길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는 분홍색 레이스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었다.
그녀에게서 돌아가신 멋쟁이 엄마를 보았다. 물론 우리엄마가 훨씬 더 예쁘고 세련되었었지만.
나는 그렇게 신작 ’봉별’을 완성했다. 나에게 작품 ’봉별’은 새로 피워낸 꽃나무가 되었다.
그녀들 또한 그녀들의 삶 속에서 나와 같은 손님들과의 수 많은 만남과 이별을 통해 꽃나무를
피워냈을 것이다. 비록 생각했던 그 꽃나무가 아니었을지라도. 비록 흉내에 불과했을지라도.
내 엄마가 나를 피워냈고 시들어갔던 것처럼. 이상과 금홍이 그렇게 만났고 헤어졌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