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집 – 어머니를 위하여
200112.7~12.16포르떼짜 다 바쏘 성
(historic fortezza da Basso in florence)
로렌조 일 마그니피코상 The “Lorenzo il Magnifico” award
GRAFIC(Drawing and Mixed Media), 4° Prize
사유의 집 – 어머니를 위하여
동양에서 말하는 자유로움이란 무엇인가.
말하지 않고 안으로 축적되는 자연의 창조력과 같은 힘이다.
우주를 하나의 연속체로 인식하고 자연과 창조력의 기본 원리 즉 보편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에 자유로움의 열쇠가 있는 것이다. 나의 작업은 이것에 뿌리를 두며, 따라서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텅 빔의 상태, 혼돈 속에서 만나는 우연과 변화, 막히지 않는 열림의 공간, 거스르지 않는 부드러움, 애 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물과 같이 자연의 어법을 따르는 것에 의미를 둔다. 사유라는 말에는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을 통하여 아직 경험하지 않은 객관적 사실을 미루어 보는 능력>이란 말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의미에는 자연을 대하는 자유로움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내가 말하는 사유란 오래되고 영원한 것이며 자유로움 안에 내재된 다중적인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안에 내게 있어서 ‘자연’ 그 자체인 어머니가 있다.
밤늦게까지 가위질과 바느질로 젊은 날을 산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며 나는 나의 자아가 담긴 내 안의 집을 만들어 보았다.
바느질로 연결된 각각의 작품은 각자가 자연, 즉 사유의 단위이며 부분이면서 전체로 작용한다. 작품 안에서 표현되어지는 여백인 흰 공간과 먹에 의한 흑의 공간은 세계에 대한 본인의 부정과 긍정, 소극과 적극, 음NEGATIVE과 양 AFFIRMATIVE의 의미를 가지며 또한 인위적인 장치EQUALIZER로서 화면상의 조율을 동반하여 자연스럽고도 스스로 그러한 상태를 만든다. 여백은 내면의 세계와 외면(주변-나를 제외한) 의 세계가 만나는 장소이며 사유의 의미를 풀어놓은 정신적 장치이다. 이는 부분과 전체가 더욱 부각될 수 있기 위한 객관적인 틀이며 자유로울 수 있기 위한 유동적인 도구인 것이다. 그리고 검은 먹은 보이되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원래의 뜻에 여백의 의미가 함께 존재하고 있다. 결국 보여지는 색으로서 여백과의 대립이 아닌 근원적으로 서로 동등하게 융합하는 하나의 자체로 작용하게 된다. 물에 희석된 먹은 바람과 기온에 의해 물이 증발하고 바탕 재인 천 위에서 먹 자체의 본색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모두 깜깜한 흑색으로만 보인다.
인내와 추측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가는 인간의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My house of thinking
What is the meaning of freedom that has been mentioned in Asia?
Its like the power of creation that nature possesses, not broadcast or said aloud. It accumulates within.
The key to freedom lies in understanding that the whole universe is connected and in accommodating the basic theory of nature and creation power, that is, the general laws of nature. This is what my work is rooted in and therefore, I concentrate on a state of emptiness or nothingness and not being shown easily, coincidence and change meet within chaos, an open space not blocked, softness that doesn‘t oppose, trying not to try, and following the language of nature, just like water. The word thinking implies <guessing the inexperienced objective truth through experienced truths>. I think the freedom to deal with nature lies in this meaning. Therefore, the thinking that I’m talking about is ancient and eternal and it is the various ebb and flow inherent in freedom.
Each piece of work that is connected by rough and free needlework is nature by my interpretation, that is, units of thinking and parts of it, and at the same time it works as a whole. The white spaces shown by the empty areas and the black spaces shown by the Chinese ink in my work means my negative and affirmative attitude towards the world; of being passive and active, the yin and yang, and it also works as an artificial equalizer to adjust the screen to make it look natural and become itself. In addition, the empty area is where the inner world and the outer world (surroundings – excluding myself) meet, and also a mental mechanism that explains the meaning of thinking. This can be an objective frame that emphasizes the parts and the whole even more, and the flexible equipment to allow freedom. And the space expressed with black Chinese ink is a space that can be seen and also yet unseen in which its original meaning exists with the meaning of empty space. In the end, it does not act against the empty space as a visual color, but combines with the empty space completely and equally and acts as one. The diluted Chinese ink can only be seen as dark black ink until the many intended colors show themselves on the cloth when the wind and temperature evaporate the water. It is just the same with peoples lives, in which they look for the unseen road with patience and speculation.
These parts and parts, whole and whole, meet and enmesh, intertwine, and my house is comple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