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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겐 이불 같은 담벼락

우리 집은 아주 오래된 동네인 원효로에 있습니다.
최근엔 오래된 일본식 집들과 옛날에는 큰 부자 집 이였던 하얀 이층집들이
거의 대부분 다세대 주택 혹은 연립 주택으로 새로 지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오밀조밀 서로의 대문을 맞대고 있는 곳입니다.
작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네로 접어들면 희미한 가로등 밑,
몇 십 년은 지났을 돌담 벽과 울퉁불퉁한 돌계단이 집으로 안내합니다.
언젠가 초등학교 친구와 담벼락 아래 떨어진 감나무 마른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서로의 목에 걸어 주던 일, 고3 여고 시절 지겨웠던 여름날 밤, 친구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밤 깊은 줄도 모르고  배꼽을 잡던 일,
밤늦게 갑자기 찾아온 남자 친구와 몰래 키스를 해 보기도 했던 일…
추억이 묻어 있고, 삶의 때가 얹어져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
인생이 무거운 날 오후,
가끔 동네를 무심히 걸을 때,
따뜻한 담벼락은 나를 이불처럼  덮어 줍니다.

나의 유년과 청춘과  그리고 나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
서른에서도 두 해가 지난 지금, 그곳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홍지윤
2001.10.2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