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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어떤 식물 세포기에 대한 생각

제 2회 개인전

5.23~5.28

문예진흥원미술회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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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인가 작가의 작업실에서 보았던 나무들은 지금 더 대담해져 있거나 거칠어진 그러면서 좀 더 활달한 포즈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이 나무는 ‘자연’이자 ‘세계’이고 안으로 말린 자아, 자신의 육체와 감정의 은유로 대체되는 것 같다.
그림이란 것이 닫히고 경직된 자신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유일한 것이라면 화가들에게 그림은 어떻게 보면 결말이나 답변을 유보한 채 자아가 세계와 만나 던지는 질문, 삶의 과정과 연류된 제작 과정을 은근히 견디고 즐기면서 자신을 다독거려 주는 그런 것들이지 않을까?

무엇인가를 떠올리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꿍꿍이를 해대다가 어렵사리 그리고 붙이고 칠하고 뚝닥 거리면서 생각지 못한, 애초의 생각과 다분히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그 과정에의 희열과 흥분, 에너지등이 끈적하게 붙은 것이 그림이라면 거기에는 전적으로 노동과 유희로서의 그리기와 살면서 체득되는 무수한 상념과 감정들의 부산함 역시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홍지윤의 작업은 나무에 대한 상념을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감상의 대상으로서 재현된 나무가 아닌 나무를 빌은, 기호화된 혹은 상징과 은유로서의 나무의 외피를 빌은 자신이 붙어 있는 것 같다.
나무뿐만이 아니라 동물(개와 말), 태양, 식물, 화분, 병등이 그렇다.
이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은 자신이 늘상 보고 가까이 하는 것들이다.
그러기에 의인화된 사물로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감정을 이입해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을 모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그림 속에 이 작가의 감정들이 들어가 있다는 얘기일 수 있겠다.

1.그림에 대한 열의가 뜨거워 보이는 한편에는 그만큼의 거칠고 즉흥적인 낭만과 감정의 울렁임이 다소 앞서는 형국이다.
재료나 마티엘의 과다한 드러남도 그에 연유한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그 기복의 고조에 순응하는 그림, 전통이나 장르적 특질 등에 얽매이기보다는 그림에의 본능을 고스란히 발아시키려는 마음이 우선하는 그림, 유아적 상상력과 치기 어린 듯한 그림, 느낌에 기대어 자연스럽고 활달하게 그때 그때의 자신을 확인하는 듯한 그림으로 보인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국의 현실, 우리네 화단에서 겪게 되는 여자 화가로서의 삶에 대한 고단함도 개입되어 있다는 느낌도 든다.

2. 의도된 구성과 거친 방법들은 어느 면에서 본능이나 솔직한 상태의 동경에 따른 세련미와 고급한 감성의 의도적 배제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키치로 나가지는 않는다.
반면에 그는 아이들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 인냥 솔직하고 본능적인, 혹은 그림을 철저히 자신의 육체와 마음에서 떠오르고 부풀어지는 것에 따르는 그런 편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 마음이란 이중적이고 가변적이며 혼돈 스러운 것일 수 있다.
해서 차라리 두개의 다른 자아를 긍정하고자 하는 편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사이에서…
사실 오늘날 대다수의 젊은 작가들은 인간이 지닌 이중성, 분열과 혼돈을 스스럼없이 긍정하면서 그 두개의 자아를 자신으로 인정하고자 한다.
아마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육체와 정신의 완벽한 조화로서의 고전적인 인간상이 와해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서구의 경우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 육체와 정신은 여지없이 붕괴되어 버렸으며 자본주의의 심화는 그에 비례해 비인간화 및 물질이 다른 어떠한 것 보다도 중요시 되고 유일한 가치가 된 세계/현실/삶을 만들어 놓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포스트 모던한 이 시대의 인간 역시 ‘포스트 휴먼’이 되어 점점 자신을 해체시키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과 문화가 아닐까?
이런 분열되고 혼돈된 자아를 겪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대다수의 작가들은 실상 이런 질병에 한정 없이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림은 어떤 면에서 건강과 직결된다.

3. 한지 위에 삼베와 동판, 석고와 골판지등을 부착하고 원색의 석채와 분채들을 사용한 이 작가의 그림은 그만큼 다양한 재료의 구사와 방법의 전개로 인해 흡사 재료의 실험장 같다.
재료들에 의한 물리적 체험이 강하게 앞서고 있다는 생각이다. 동판과 나무, 흙, 물풀에 적신 한지등을 화면에 부착하고 이를 통해 생기는 물질감, 다채롭게 짓고 있는 흔적과 표정, 질감과 삼베천, 물풀에 적신 한지 그만큼 다양한 색채를 통해 ‘나’의 모습을 화면에 담고자 한다는 것이다. 재료의 사용을 보면 그가 여전히 동양화의 전통을 의식 해내면서 그 위에 실험성을 가한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인데 이는 재료 구사뿐만 아니라 나무(인간과 삶, 자연)라는 대상의 반복적인 소재 화에서도 감지된다.
또한 제작의 과정에는 의도된 것보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즉흥적으로 파생되는 것들을 용인 해내는 데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그만큼 감정의 진폭이 커 보이고 낭만적이며 향수적인 마음의 침전물들이 화면 위로 올라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일상의 자연스러운 체험이나 감동적인 문장, 자신을 자극하는 영화의 한 장면, 아니면 타자에 대한, 자신과 타자간의 기억등이 그의 그림의 내용을 채워 주는 편 인 것 같다.
흐르는 듯한 해서 잡히지 않는 것들에 물질 감과 표정과 강렬한 색감을 부여 해주는 시도는 그만큼 그림이 위안과 자기애에 대한 보상과 닮아 있기 때문일텐데 오늘날 젊은 작가들이 그림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변적이고 개인적인 그림에 따른 자기만의 방법론과 화면 구성이 앞서는 홍지윤의 작업은 그런 성격을 강하게 보여준다.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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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개인전 1997.5.23~5.28 문예진흥원서울미술회관 <<어떤 식물 세포기에 대한 생각>>
전시를 준비하며 …..작업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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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물 세포기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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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80*60cm
목판 동판 한지 분채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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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266*266cm
목판 동판 한지 석고 분채 석채 먹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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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 94*133cm  1995
2. 나무 96*118cm  1995

1

나무 125*107cm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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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개
45*45cm 1997

1

말이 토해낸 말
162*130cm
1997

1

흥겨운 개
31*52.5cm
1997

1

건널 수 없는 강
162*130cm
1997

1

자아 – 탈출하고 싶은
162*130cm
1997

1

부서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117*91cm
1997

1

하얗게 새어버린 내 마음속의 슬픈 사랑이 이렇게 …..
20*30cm
1996

1

1.술병속으로 별이 떨어진다.   24*55cm 1996
2.말하지 않는것들 _진실을 말한다.  117*91cm  1996
3.One summernight kiss   40*60cm  1996
4.얌전하고도 다소곳한 여자의 초상   20*30cm   1996
5.우리모두 손을잡고 다함께 춤을 춥시다.  (30*40cm)*2 1996

1

바람에-흔적
131*96.5cm
1997

1

꽃바람후에 빗줄기 162*130cm 1997

1

緣 날리기 1
162*130cm
1997

yy22_1

緣 날리기2
30*45cm
1997

1

빨간수풀과 파란 개
(117*91)*2
1997

1

행운의 섬
25*30cm
1997
장_그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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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개인전
1997.5.23~5.28 문예진흥원미술회관
<<어떤 식물 세포기에 대한 생각>>

전시장 전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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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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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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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물 세포기에 대한 생각>>

전시장 전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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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개인전
1997.5.23~5.28 문예진흥원미술회관
<<어떤 식물 세포기에 대한 생각>>

전시장 전경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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